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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서로공감] 84가지 야생화 이야기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그림과 더불어 꽃이 많이 쓰인다. 진부하긴 하지만 ‘그림 같다’, ‘꽃 같다’고 하면 그것이 사람이든 풍경이든 일단 보기 좋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연이 빚은 오묘한 빛깔이며 얇고 투명에 가까운 꽃잎,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술이 어우러진 꽃은 그야말로 미(美)의 상징으로 그만 한 것을 찾기 힘들다.

한데 그 꽃은 보통명사다. 앉은부채, 피나물, 닭의장풀, 이질풀… 이름도 낯선 이런 들꽃도 아름다움의 잣대로 쓰이는 ‘꽃’ 축에 들까. 우리는 아름다운 꽃 하면 장미며 백합, 국화 같은 꽃들을 떠올리는 것 아닐까.

책의 지은이는 그런 세태가 안타까웠던 모양이이다. 복수초에서 난티나무까지, 어지간히 관심 있는 이가 아니라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들꽃 84가지를 찬찬히 살펴 가만한 사랑을 담았다. 그러니 호들갑스럽지 않은 야생화 찬가인 셈이다.

어느 여름 지리산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에 쥐오줌풀을 만난 지은이. 뿌리줄기에서 쥐의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며 “쥐오줌풀을 쥐오줌풀이라고 알 리 없는 벌 두 마리는 제대로 익지도 않은 쥐오줌풀의 꽃대궁에 매달려 정신없이 꿀을 따고 있느니!”라고 전한다.

이야기는 무슨 연유인지 우리나라 풀이름 중 고약한 이름, 그러니까 여우오줌, 광릉요강꽃, 개불알꽃 등을 들며 “일견 얄궂기도 한 그 이름과는 달리 그 꽃들의 생긴 모양은 보통 아름다운 게 아니다”라고 두둔한다.

물론 책은 에세이집인 만큼 식물도감처럼 과학적 접근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꽃말이나 유래, 역사적•문화적 예화 등 인문학적 시각으로 다가가지도 않는다.

“조금 짓궂고 희한한 것일지라도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게 우리들의 삶일 테니 말이다. 이름을 순화한다고 개불알꽃을 복주머니란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원래 이름이 좋다.” 이런 식의 순순한 자세, 낮은 목소리가 오히려 읽는 이의 공감을 자아낸다. 착한 책의 힘이랄까.

꽃 이야기인데 심심하지 않다. 강원 영월군 중동면 운교산에서 만난 꼬리진달래. 흰 꽃이 가지 끝에 다닥다닥 뭉쳐 있고, 수술은 꽃잎보다 도드라지게 뾰족한 모습을 전하다가 그날 산에 이르는 길에 땀을 식혔던 녹전중학교 운동장에서 들었던 매미 울음을 이야기한다. 느닷없이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 한 소절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 쓰라려’를 소개하면서.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으면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후기로 붙였는데 자유로 길가에 줄지어 떨어진 능소화 꽃잎을 두고는 “불안한 눈망울을 굴리며 서성거리는 꽃들, 마치 슬하를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능소화를 떠나지 못하는 꽃잎들이 자꾸 눈에 밟히기에!”라고 적었다.

여기서 눈치 빠른 이는 이미 알아챘겠다. (꽃을 가까이 보기 위해) ‘몸을 낮추다’라는 뜻의 굴기(屈己)란 낯선 필명을 쓴 지은이는 시인이다. 〈신인왕제색도〉, 〈인왕산 일기〉 등 수필집으로 요란하지 않은 일상을 차분히 돌아보게 하는 솜씨를 보여준 바 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늘 일을 도모하고 말을 만들지만 나무는 언제나 조용하다.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한 그루의 나무로 수렴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꽃 한 송이를 가지 끝에 올려놓음으로 이 세상을 맵시 있게 마무리한다.”

지은이가 다음에 찾아 전해줄 ‘일상의 경이(驚異)’가 기대된다.

 

 내게 꼭 맞는 꽃

내게 꼭 맞는 꽃
이굴기 글·사진 | 궁리 | 384쪽 | 1만8000원

 

글 ·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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