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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융성, 이젠 ‘스토리텔링’도 한류다

어찌 보면 참 진부하다. 가장 큰 줄기인 젊은 남녀의 사랑에서 애국, 사명감, 평화, 정의, 용기, 우정, 나눔까지.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제들이다.

또 하나. 칠순의 할머니가 어느 날 이상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다가 스무 살 처녀가 되었다. 황당하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설정이다. 이런 작품들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까지 뜨겁게 달구었다. 하나는 벌써 32개국에 수출까지 하면서 ‘대장금’ 이후 최고의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고 난리법석이고, 또 하나는 이미 3개국에서 자기 버전으로 만들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송중기가 멋있고, 송혜교가 예뻐서? 그들이 한류 스타여서? 드라마로서는 거액인 130억 원이나 들어간 대작이어서? 심은경의 연기가 워낙 능청스럽고 재미있어서? 분명 그런 이유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진부함과 황당함을 새로움과 그럴듯함으로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한류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아시아가 들썩일 리는 없다.

‘태양의 후예’와 ‘수상한 그녀’는 진부하고 황당할 뻔했다. 그야말로 우리가 쓰는 ‘뻔하다’란 말의 두 가지 의미 중 하나인 ‘상투적’인 내용에 머물렀다면.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내용을 협소하고 특수한 문화적 경험으로 제한한 후 낡고 몰개성적인 일반성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 인간 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부를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으로 표현해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뻔하다’의 또 다른 의미인 ‘원형’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새로웠다.

 

진부하고 뻔한 내용이 아닌
아시아 울리는 이야기

‘태양의 후예’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랑, 조국애, 우정, 희생, 책임감, 평화 등은 이전의 소설과 드라마, 연극과 영화가 수없이 반복했다. 그렇다면 유시진 대위(송중기)의 지고지순한 마음, 윤명주 중위(김지원)와 서대영 상사(진구)의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는 열정적 사랑, 특전사 대원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임무 수행과 전우애, 인종과 지역을 넘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대로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의료진의 박애와 봉사정신이 왜 아시아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을까.

‘명대사’로까지 칭송받고 있는 작가의 재치 있는 신세대적 말솜씨, 밀고 당기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젊은 남녀 두 쌍의 사랑의 재주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촌스럽고, 유치하고, 고집스러우면서도 신세대적이면서도 독특한 감각과 분위기로 인간, 특히 젊은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보편적 가치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대와 배경부터 그렇다. 더 이상 6·25전쟁도 월남전도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역사일 뿐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 지금은 비록 이국땅이지만 이라크 전쟁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전쟁은 단순히 다른 나라와 민족들 간의 싸움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지진, 바이러스 감염, 인권유린과 마찬가지로 지구촌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불행이고, 재난이고, 구호의 대상이다. 우리에게는 특별할 수 있지만, 지금 세계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태양의 후예’는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의 젊은이들의 관계를 통해 인류 보편적 소재로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위해 젊은 남녀가 가치관, 직업, 학력, 계급을 뛰어넘으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곳의 사람들의 생명까지 지켜주려 목숨을 거는 모습이 누구의 눈엔들 아름답고 값지지 않겠는가. 이런 ‘글로벌 스토리텔링’에 아시아는 물론 문화적 색채가 전혀 다른 유럽까지 중간중간 작위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에 공감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그 공감 속에는 ‘로망’도 있다. 드라마 속의 사랑도, 애국도, 우정도, 의무감도 지금의 나, 그리고 지구촌 어디의 젊은이들에게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물질과 외모,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잣대가 되어버린 나는 윤명주처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는가. 기회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 복무를 피하고 싶은데 드라마의 특전사 대원들처럼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애국을 할 수 있는가.

지극히 당연하게 "예"라고 말할 자신이 없는 순간, 현실에 그 정서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아는 순간, 목숨을 던져서라도 내 여자를 지키고, 이웃의 생명을 지키고, 조국을 지키는 유시진과 서대영은 멋있을 수밖에 없다. 강모연(송혜교)과 윤명주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의 ‘로망’이 된다.

‘수상한 그녀’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머니가 된 여자가 인생의 경험을 고스란히 갖고 스무 살 처녀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꿈(가수)을 이룬다. 어찌 모든 여성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태양의후예

수상한그녀

▶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영화 ‘수상한 그녀’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현실성 있는 판타지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보편적 경험을 독특한 문화적 특성으로 표현
현실성 있는 판타지에 세계인 공감

이 설정 역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수상한 그녀’에 아시아 국가들이 반했다. 먼저 베트남에서 ‘내가 니 할매다’로 제작돼 지난해 12월 개봉 이후 역대 베트남 영화 흥행 2위(44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20세여, 다시 한 번’이란 자국 버전으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고, 일본에서도 다베 미카코와 바이쇼 미츠코 주연의 ‘수상한 그녀’로 선을 보였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자국판을 준비하고 있다.

‘수상한 그녀’가 ‘원소스 멀티 테리토리(하나의 소스를 모티프로 국가별로 현지화하는 것)’에 성공한 이유 역시 스토리에 있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판타지이지만, 그것이 누구나 공감하는 삶에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은 어느 나라에서든 그곳의 문화와 정서로 쉽게 변형될 수 있다.

오말순(나문희) 할머니가 스무 살 처녀로 돌아갔다고 뜬금없이 공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같은 삶의 터전에서 과거 환경과 가치관에 가로막혀 포기했던 작은 꿈을 위해 용기를 내 도전할 뿐이다. 이 같은 현실성 있는 판타지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아시아권 할머니들에게도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주었을 것이다.

‘글로벌 스토리텔링’이라고 별것이 아니다. 억지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꿰맞추지 않아도 된다. 나와 이웃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서 소재와 아이디어를 찾아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엮고, 그 속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느끼고 재발견하게만 해준다면 형식과 크기를 떠나 언제든 지역과 인종, 언어와 문화를 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와 ‘수상한 그녀’처럼.

 

 이대현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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