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류에 대한 반감이 부쩍 거세진 적이 있었다. 그들이 ‘혐(嫌)한류’, ‘반(反)한류’라고 이름 붙인 이 거부 운동은 그러나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것은 문화 자체에 대한 반발이나 실망이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문화는 정치가 아니다. 군사는 더더욱 아니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누가, 무엇으로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지금처럼 지구촌의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았던 과거에도 문화는 사실상 국경이 없었다. 오리엔탈 문화가 서구로 자연스럽게 퍼지고, 서구문명이 물밀 듯이 동양으로 건너왔다. 단지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그 속도가 느렸을 뿐, 결국 어떤 장벽과 억압도 소용이 없었다.
또 문화란 한번 그 새로운 맛에 매료되고 공감하면 쉽게 뿌리칠 수 없다. 한번 문화에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문화는 그 생명력과 전파력이 큰 것이다. 사실 한류는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저절로 불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먼저 감동하고 즐거워한 드라마와 영화, 노래를 일본, 중국, 나아가 동남아 국가의 국민들도 공감하고 좋아하고 따라 부른 것이다.
한국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삶의 모습
공감하는 가치와 역사 등이 한류의 매력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드라마와 영화, 노래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어서다. 그 매력은 단순히 예쁜 배우, 멋있는 가수의 존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요체는 콘텐츠의 품질이다. 우리 드라마와 영화, 노래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그것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소재와 열정적인 연기, 거침없는 표현력을 발견했다. 아직도 통제된 사회와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국인들은 ‘자유’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꼈고, 동남아 국가 젊은이들은 우리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삶의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아시아 유교문화권이 공통적으로 소중히 여기고 공감하는 가치와 역사와 감정들을 우리 드라마와 영화와 노래는 가지고 있었다.
문화는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그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 높낮이 차이가 클수록 흐르는 속도와 양도 빠르고 많다. 적어도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이제는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는 우리 문화가 갖는 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설령 아무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억압한다 해도 문화는 거꾸로 흐르거나 멈추지 않는다. 물론 잠시는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댐을 높이 쌓아도 물이 계속 들어오면 넘치고 만다. 아니면 그양을 감당하지 못해 일시에 무너지거나. 더구나 한류는 이미 아시아 젊은이들에게는 일상이 되었고, 자기들도 그 흐름에 맞춰 문화의 지향점을 바꾸고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나의 것’이 되었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에 혐한류 기류가 흐르고, 한류에 대한 중국 당국의 통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리가 먼저 겁을 먹고 있다. 기존 중국 정부가 해온 규제도 사드와 연관 지어 침소봉대했고, 다른 이유로 멈칫하거나 잠시 멈춰선 것들까지 찾아내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난 8월 중국의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다음 달부터는 한국 연예인은 출연할 수 없다’는 내용을 주요 방송사에 보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서는 중국 네티즌이 조작한 ‘한류 콘텐츠에 대한 공식적인 제재조치가 발표되었다’는 주장으로까지 번졌다.
아무리 문화에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어떤 국가도 외국의 문화가 자국의 문화를 완전히 뒤덮어버리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중국은 자유가 제한적인 사회주의 국가다. 법적, 제도적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드라마, 노래들도 자국 문화 육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면 제한한다. 방송 편성 규제와 쿼터제로 프라임타임에는 한국 프로그램 방송을 금지하고, 1년동안 20시간 이상 우리 콘텐츠를 방송할 수 없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중국 젊은이들의 한류에 대한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방영으로 누적 조회 수 13억 뷰를 기록했다. 방송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중국에서 우리 한류는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 동영상에까지 사전심의제를 적용하고, 수량 제한과 함께 실시간 방영까지 금지시켰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사전전작제로 중국의 규제와 상관없이 중국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동아DB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사드 배치 문제와 상관이 없으며, 어차피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사전전작제, 중국과의 합작, 현지화로극복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사실 사전전작제는 작품의 완성도와 졸속 제작 방지를 위해 오래전부터 수없이 외쳐왔던 것이다. 중국이 그것을 앞당겨주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그렇게 해서 아무런 걸림돌 없이 중국에서 선풍을 일으켰고,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 tvN의‘치즈인더트랩’도 그렇게 아무 걸림돌 없이 양국 동시 혹은 시차 방영을 한다.
사전전작제·현지화·공동 투자로 ‘윈윈’ 이어와
한류, 중국이 세계에 맞설 수 있는 문화 동반자
영화 ‘수상한 그녀’를 중국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으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의 소스를 국가별로 현지화하는 ‘원 소스 멀티 테리토리’도 있다. KBS ‘불후의 명곡’, ‘1박2일’, ‘개그콘서트’와 MBC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와 SBS ‘런닝맨’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포맷을 가져가는 것도 비슷하다. 합작, 공동 투자도 중국이 더 적극적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자국 콘텐츠로 감당할 수 없는 데다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한류에 대한 중국인들의 욕구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원 소스 멀티 테리토리’로 포맷을 중국에 수출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동아DB

▶영화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중국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 포스터. ⓒ동아DB
문화란 억제할수록 더 욕구가 강해진다. 게다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지상파 채널만 3000개인 중국의 미디어 시장까지 열렸다. 그러니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사드 배치 문제를 가지고 한류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막는다고 막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서로 필요에 의해 대중문화의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서 윈윈(상생) 게임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자본과 시장이 우리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소재, 제작 완성도와 결합해 아시아와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류야말로 문화산업의 최대 라이벌인 미국과 맞설 수있는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동반자가 됐다. 그러니 섣불리 포기하겠는가.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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