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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욕망이 멈춘 톨스토이 묘지

소작인 바흠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싶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처지고 보니 소작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열심히 일했다. 조금씩 땅을 늘려갔다. 땅이 늘어날 때마다 즐거웠지만, 기갈 들린 사람처럼 그는 마냥 부족함을 느끼며 아쉬워했다.

그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을 만큼의 넓은 땅이 마련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바시키르인들이 사는 마을에 가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아주 싼값에 비옥하고 넓은 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전 재산을 정리한 바흠은 즉각 그리로 찾아간다.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 (출처 : 위키미디어)

촌장의 제안은 환상적이었다. 일출에서 일몰 때까지 그가 걸어서 밟은 땅이 그의 몫이 된다고 했다. 다만 해 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한 평도 받지 못하고 돈만 잃게 된다는 것. 바흠은 동이 트자마자 내달리기 시작한다. 앗싸, 내 땅, 내 땅, 하며 내딛는 걸음마다 신바람이 났다. 더욱이 가면 갈수록 비옥한 땅이 널려 있었다. 멈출 수 없었다.

앞만 보고 땅 욕심을 부풀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서녘으로 기울어 있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지 못하면 큰일 아닌가. 불안과 초조 가운데 속도를 냈지만 그럴수록 몸은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땅에 대한 욕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내달렸다. 가까스로 해가 떨어질 무렵 도착했다. "허허, 장하구려! 땅을 제대로 잡으셨소!"라고 외치는 촌장의 말을 그는 들었던가. 도착하자마자 쓰러진 바흠은 그만 피를 토하고 죽고 만다. 그리하여 고작 제 몸 하나 뉘일 만한 좁은 땅속으로 돌아간다.

두루 아는 것처럼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 욕망의 어두운 곳에 성찰의 빛을 던지려 했던 톨스토이의 의도가 뚜렷한 작품이다. 러시아 남부 툴라 근교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 문학적 명성과는 달리 실제 그의 삶은 요철이 심한 파노라마였다. 조실부모했고, 대학도 중퇴했으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욕망을 순화하고 농민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청빈과 금욕을 강조하던 시기에 이 이야기를 썼다. 욕망과 소유의 문제를 현실에서 풀어보려던 그는 자신의 재산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했다. 현실적 세계관을 지녔던 그의 아내 소피야와 자식들은 불만이었다. 그 불화가 절정에 달하자 여든둘의 노인 톨스토이는 가출을 감행한다. 그러다 객지에서 폐렴으로 눈을 감는다. 자기를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땅에 묻은 다음 거기에 어떤 것도 만들지 말라는 뜻을 남겼다.

실제로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6월 말 모스크바에서 툴라를 거쳐 야스나야 폴랴나를 찾았을 때, 안내인은 톨스토이의 묘지를 설명하며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잘 보고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자작나무 숲길을 걷다가 작은 봉분 하나를 가까스로 마주쳤다. 작은 비석마저 없었다.

바흠처럼 그렇게 작은 땅에 누워 있었다. 다만 가운데로 뚫린 하늘과 마주한 가운데 새들의 지저귐과 대화하는 형국이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대문호이자 사상가가 차지한 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땅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증거하고 있었다. 욕망이 멈춘 자리는 작지만 아름다웠다.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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