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덩그러니 누워 있다. 빈 지게다. 아무런 짐도 싣지 않은 지게가 허허롭다. 지게의 주인도 보이지 않는다. 넓은 초원이었을까, 산비탈이었을까, 혹은 밭이랑 사이였을까…. 이상하게도 지게가 놓였던 자리가 재생되지 않는다. 환상처럼 오롯하게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빈 지게 이미지 그뿐이다. 이런저런 일을 마무리하려고 허둥대던 지난 연말의 어느 날 새벽, 꿈길로 내게 찾아온 풍경이었다. 왜 하필이면 빈 지게였을까?
늘 시간에 쫓기며 허둥지둥 살았건만,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허망함을 우려내던 무렵이어서 그랬을까.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온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내 지게엔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는 내려놓자고, 내려놓자고, 염원하고 또 기원한 까닭이었을까.
이제는 바퀴 달린 각종 탈것들에 밀려 거의 사라진 운반도구지만, 농경사회에서 지게만큼 유용한 게 또 어디 있었으랴. 지게는 구절양장(九折羊腸), 제아무리 비좁고 구불구불하고 험한 길이라도 지나갈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지게는 인간 신체의 현묘한 확장이었다. 지게를 통해 인간의 신체는 잠재적 에너지를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농촌에서 자란 터라 더러 지게질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지게를 지고 나설 때 할아버지께서 타이르셨다. 절대 욕심 부리지 마라. 자세한 설명 없이 무슨 공안처럼 그런 말씀을 던지셨을 때, 아직 어린 나로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최대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지게 위에 많은 풀들을 실었다.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일어서기 어려웠다. 젖 먹던 힘까지 다했지만 일어서지 못하고 그냥 지게와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분했지만 다시 짐을 조금 줄였다. 이번에는 겨우 일어서긴 했는데, 몇 걸음 못 가서 지게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지게 위의 풀 더미가 다시 무너져 내렸다.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엔 뒤쪽으로 나자빠졌다. 전후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의 어깨와 등은 조금씩 지게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연말 꿈속 빈 지게의 공간적 배경을 어린 시절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던 고향의 뒷산 고갯마루로 이끌어간 셈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생각했다. 올해는 그 빈 지게에 어떤 짐을 질까? 나만을 위한 짐이라면 가능하면 내려놓기로 하자, 아니면 최소한으로 줄이자, 남의 짐을 나누어 우리의 짐을 지자…. 그런 지게질을 통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동사(自利利他同事)’의 경지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글·우찬제 (문학비평가·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201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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