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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시인 원재훈] 나비가 된 꽃잎

나비가 된 꽃잎

 

우리들은 착시 현상으로 순간적으로 놀라곤 한다. 지나가는 여자의 뒷모습만 보고 아내인 줄 착각하기도 하고, 착시 현상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으로 태어난 사진이나 그림을 만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M. C. 에셔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에셔를 단순히 착시 현상만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독창성과 창의성은 착시 현상이 한몫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꽃의 도시답게 경기 고양시 일산의 벚꽃길은 요즈음 말 그대로 절경이다. 어젯밤 비가 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빨아들이면서 꽃들이 만개하고 있다. 집에서 작업실로 걸어가는 짧은 골목길에도 벚꽃이 피었는데, 간혹 라일락꽃도 있어 나무 아래 멈춰 서서 잠시 향기를 맡으며 서 있다가 길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땅바닥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벌써 나비라니 좀 이르지 않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며 사진을 한 장 찍고 손으로 집었다. 그런데 이놈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그것이 떨어진 벚꽃인 것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허허 웃고 말았다. 완벽한 착시 현상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은 그 꽃잎이 나비가 되어 내 눈앞에서 훨훨 날아가는 것이었다. 수천 마리의 나비가 날아올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잎이었다.

번잡스럽게 장주(莊周)의 나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고, 나비가 내가 되는 현상을 햇살이 화창한 봄날에 경험했다. 착시 현상은 눈으로 보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 너머에는 마음으로 보는 단계가 있다. 눈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 마음으로 흘러들어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 경험을 예로 들자면 나비인 줄 알았던 꽃잎이 눈으로 본 시각의 착시 현상이고, 그 꽃잎이 다시 나비가 되는 것은 마음의 착시 현상이다. 현실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이런 착시 현상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친다.

그들은 다만 환상을 볼 뿐이고 그것이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꽃이 나비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현실과 상상의 세계 사이에, 아슬아슬한 가장자리 혹은 경계선이 우리들에게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나무를 그린 화가의 작품을 보면 저것이 분명히 현실 속의 나무가 아님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나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으려다 그만 부딪쳐 떨어졌다는 우리 옛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올봄에는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 한 장 때문에 이런저런 상념이 많다. 내가 지금 어떤 환상 속에서 현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본다. 내가 쓴 글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유용한 것이 될지 알 수도 없고, 그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닌가 싶어 낙담하곤 한다. 어디까지 가야 내가 쓰고 싶은 그 환상의 끝이 보일 것인가. 어쩌면 그 길바닥의 꽃잎은 우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터벅터벅 갈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봄의 정령이 보내준 신의 선물일 수도 있다. 아, 그렇다. 또 봄이다. 봄에 꽃이 피는 이 단순한 현실이 세상의 그 어떤 환상보다도 아름답고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닐까. 꽃은 꽃이고 나비는 나비다.

성철 스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가고 있는 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오늘 할 일을 어서 하자. 내가 보고 싶어 하는 환상은 거기에 있으니까 말이다. 떨어진 꽃잎처럼 책에서 향기가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이 환상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묵묵히 가고 있다. 그 길에 봄이 되면 꽃이 피어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간다. 이것이 바로 축복이 아닌가 싶다.

 

· 원재훈 (시인)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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