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 이런 것들을 고요한 상태에서 성찰 하는 게 좋다고 흔히 말한다. 당연히 좋은 말이다. 그럼에도 막연한 말이기 쉽고, 또 그 실제가 아득하여 어쩌면 텅 빈 말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누구나 원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이들이 자기의 전 생애를 걸고 그 문제를 탐문한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하나의 길, 이러한 하나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 그리고 하나의 작은 길의 암시” 를 찾기 위해 문학적 운명을 걸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헤세는 내면의 진지한 갈등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는 끈질긴 시도를 펼쳐 보였다. 선교사인 아버지의 요구에 의해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며 결연히 자퇴 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시계공장 직공과 서점 점원 등을 전전하기도 했다.
헤세는 오로지 영혼 의 순결성을 지키며, 운명적인 문학의 지평을 열어나가고 싶어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게 부여된 길을 한결같이 똑바로 걷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던 헤르만 헤세는 동서 양의 사상과 문학, 예술 등을 나름대로 통섭하면서 자기 길을 열어나갔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 헤세의 ‘그림들’ 전시회가 국내에서 열린다 하여 반가운 마음에 다녀왔다. 그의 그림에 대한 이 렇다 할 정보 없이 갔던 것인데, 막상 가보니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아트에 의해 헤세의 회화적 감수성이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헤세의 원화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나로서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헤세와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에 서서히 몰입해 들어갔다.
주로 그가 살던 주변 풍경을 담담하게 그린 것 들이 많았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대상을 그린 헤세의 평정심이 돋보였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 화를 추구하다 고국으로부터 버림받기도 했던 헤세는 고통과 절망의 맞은편에서 생명의 길을 조망하려는 상상적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평화의 감각과 평정심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 는 길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를 찾고 완성하려 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헤세의 풍경에 겹쳐 <싯다르타>의 이런 대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는 바로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나는 바로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려 하였던 것이 며, 바로 그 자아를 나는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곤 했 지만, 그럼에도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이 되는 별다른 존재라는 이 수수께끼”를 풀려는 노력을 어느 순간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현듯 헤세의 풍경에서 ‘소’ 발자국 같은 것들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심우도(尋牛圖). 선종에서 소 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인간의 본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의 상징이었다. 소를 찾고자(尋牛) 발자국을 좇아 (見跡) 소를 보고(見牛) 얻고(得牛) 고삐를 매어(牧牛) 소를 타고 귀가하더라도(騎牛歸家), 진정으로 소를 얻은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소를 잃고 홀로 남아(忘牛存人), 자기 자신도 잊어야(人牛俱忘) 있는 그대 로의 자연 상태를 표현할 수 있으며(返本還源), 깨달음의 포대를 중생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入廛垂手). 헤세의 그림들에서 심우도의 또 다른 풍경을 보았다면, 그건 환각이었을까?
글 · 우찬제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20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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