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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복면가왕에 숨은 진실

예전에 중국 사람들은 태산(泰山)을 세상에서 가장 큰 산으로 여겼다. 히말라야를 가볼 수 없었고,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날 그 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을 쳤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큰 호랑이들이 집단적으로 전쟁을 하나, 혹은 용과 호랑이들이 세기의 격투를 벌이나, 그런 저런 억측들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천하를 뒤흔들 것 같았던 요동 끝에 태산에서 뛰어나 온 것은 고작 쥐 한 마리뿐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두루 알고 있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보다 더 과장된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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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굳이 불교의 맥락이 아니더라도 실상(實相)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한다. 어떤 사물이나 존재가 지닌 본연의 진실이 무엇인가, 그 진여(眞如)의 경지에 대한 탐문, 불교에서라면 근본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제법실상(諸法實相)에 대한 탐구는 심연의 진실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에 속한다. 우리는 어떻게 실상에 도달할 수 있는가.

더욱이 온갖 가상현실들이 실상보다 더 그럴듯한 이 세속 도시에서, 현란한 이미지들로 본래 상태들이 과대 포장되고 있는 대중문화의 현장에서, 과연 어떻게 실상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아니 최소한 근접할 수 있는 방안이라도 있을 것인가.

 

요즘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몇몇 음악 프로그램들은 적어도 그런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가수와 모창 가수를 섞어 가려진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게 한다. 진짜 가수를 찾아내는 프로도 그렇고,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오로지 멜로디나 가창력만으로 가왕을 가리려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이다.

아이돌이 돌풍을 일으키며 글로벌 한류 열풍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음악적인 것과는 다른 요소들 때문에 정작 가장 음악적인 것들에 대한 향유가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는 투의 비판적인 의견들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가장 음악적인 것들로 음악을 구원하려는 시도로 가면을 쓰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이미지 침범형 음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측면에서 진지한 관심에 값한다. 적어도 내겐 음악의 실상에 다가서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어디 음악뿐이랴. 다른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실상에 대한 본원적인 관심은 언제나 중요할 터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예술성에 대한 측정 도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어서, 많은 경우 예술 텍스트 그 자체보다도 예술가가 선입견의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이미 브랜드를 형성한 작가나 화가의 작품은 신인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유리하게 평가받기 일쑤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먼발치에서 봤을 때 마치 초등학생들 작품전같이 보인 그림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 만한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이었다. 충격이었다. 순간 그림을 다시 보며 다른 평가를 하려는 나의 매너리즘 때문에 다시 놀랐다.

확실히 쉽지는 않지만 문화 예술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텍스트 그 자체를 정밀하게 독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가의 이름에만 기댄다면 새롭고 전위적인 작품들이 제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미루어진다. 그리고 진짜 좋은 예술의 실상에서 멀어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허상과 허세를 넘어서 실상에 다가서려는 노력은 언제 어디에서든 유효하다.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201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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