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7월 29일, 구보 씨는 TV 뉴스에서 놀라운 장면을 봤어.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신병 수료식에서 가족들이 이등병의 군복 오른쪽 어깨에 태극기를 달아주는 거야. 국방부는 신병 1724명의 군복에 태극기를 달았고, 앞으로도 장병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겠다고 발표했어. 산전수전 다 겪은 구보 씨의 눈에 잠시 눈물이 핑 돌았지. 군인들 어깨에 태극기 하나 붙이는 데 70년이 걸렸다니. 그래서 이번엔 태극기와 국민의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게.
광복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왔지. 정부 수립 선포식장에서도 대형 태극기가 단연 눈에 띄었어. 구보 씨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땐 국기의 원리나 의미를 교육시키려는 목표에서였던지 미술 시간에 태극기를 자주 그렸어. 때때로 태극기나 무궁화 그리기 대회를 열기도 했어. 태극기의 흰색 바탕 가운데 태극무늬가 자리 잡고 모서리에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가 있는데, 건곤감리의 위치를 바꿔 그려 선생님께 혼쭐이 난 적도 있었어.

▷7월 29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열린 신병 수료식에서 6·25전쟁 참전용사인 송용호(왼쪽) 옹이 손자 송봉근 이병의 군복 오른쪽 어깨에 태극기를 달아주고 있다. 이날 우리나라 군 사상 처음으로 육군 장병 군복에 태극기가 공식 부착됐다. 동아DB
지금은 국민의례 때만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송하지만 1970년대엔 전국의 학교에서 조회시간에 낭송했지. 1968년 3월 충청남도 교육위원회가 처음 작성해 보급한 이후 1972년부터 문교부(교육부)가 전국으로 확대했어.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것이 처음의 원문인데 중간에 한 번 수정해서 써오던 것을 행정자치부가 기존 문안이 시대와 맞지 않고 문법에 어긋난다며, 2007년 7월 27일 '국기에 대한 맹세' 수정안을 공포했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지금도 쓰는 문안인데 이걸 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

▷영화 <국제시장> 속 국기 강하식 장면. 베트남 파병 및 파독(派獨) 광부·간호사 경험을 지닌 주인공 부부는 공원에서 말다툼을 하다 국기 강하식 사이렌이 울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국기 강하식도 잊을 수 없어. 국기 게양대에서 국기를 내리는 이 의식은 1978년 10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됐지. 그 무렵 직장 동료들과 '국기 하강식'이 맞느냐 '국기 강하식'이 맞느냐를 놓고 입씨름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국기 강하식이 맞는 표현이래. 영화 <국제시장>을 봤을 거야. 덕수(황정민 분)와 그의 아내 영자(김윤진 분)가 공원에서 말다툼을 하다 해 질 무렵에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사실 1970~90년대엔 애국가가 거리에 울려 퍼지면 다들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는 했지.
영화에 묘사된 국기 강하식 장면은 관객의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조크(joke)에 가까웠어. 그런데 이 장면을 두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반사적이고 강제적인 무의미한 동작이라고 비판하는 분도 있더라고. 2003년 5월 모 전 의원이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의 잔재라고 주장해 사회적 논란거리로 떠오른 적도 있었지. 글쎄 뭐 꼭 그렇게까지 과잉 해석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 시절을 거쳐온 분들은 정부가 특별히 강요해서 그렇게 반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아무튼 국기 강하식은 1989년 1월 폐지됐어. 군부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국민 여론을 반영해 정부에서 그렇게 결정한 거야.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
시민교육 차원서 더 강화해야
태극기 예찬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가 그토록 심각한 문제인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사실 미국에 가보면 날마다 성조기를 게양하는 집들이 꽤 많아. 미국의 공립 초·중·고등학생이 등교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뭔 줄 알아? 아침마다 교실에 걸린 성조기를 향해 서서 '충성의 맹세(Pledge of Allegiance)'를 하는 시간도 있어. 대강 이런 내용이지. "나는 미합중국의 국기에 대해, 그리고 국기가 표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고 신(神) 아래 갈라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인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미국에서 공식 의례를 거행할 때 '충성의 맹세'가 쓰이므로 우리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거지. 그런데 제목에 '충성'이라는 말까지 들어 있으니 '국기에 대한 맹세'보다 더 과도한 군대 용어 같지 않아? 만약 우리나라의 어떤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나서 일과를 시작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애국심이 발휘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 그들이 자주 거론하는 근거는 '붉은 악마'야.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온몸을 태극기로 휘감고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았느냐, 잠재된 애국심이 일거에 폭발한 거다, 대강 이런 얘기지. 물론 옳은 말씀이야. 그런데 어찌 보면 그건 스포츠 애국주의가 아닐까 싶어.
최근 9급 세무직 공무원 면접시험에서 애국가 4절을 아는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는지, 태극기의 4괘를 아는지 물어봤다며 문제를 제기한 언론 보도를 봤어. 시대착오적인 황당한 질문이라는 거지. 애국가나 태극기가 공직관이나 국가관 강화와 무관하다는 반론이었는데, 다 옳은 말은 아니지. 공무원 지원자라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국민에 대한 봉사의식이 누구보다 투철해야 할 텐데, 국가의 상징에 대해 질문했다고 해서 그토록 이상한 면접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태극기에 대한 사랑과 '국기에 대한 맹세'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영어 단어 하나 더 암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시민교육이지 않겠어?
* 이 시리즈는 박태원의 세태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년)의 주인공 구보 씨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70년의 기억을 톺아본 글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전 한국PR학회장)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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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