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무딘 날 조선낫 들고 / 엄니 누워 계신 / 종산에 간다 / 웃자란 머리 / 손톱 발톱 깎아드리니 / 엄니, 그놈 참 / 서러운 서른 넘어서야 / 철 제법 들었노라고 / 무덤 옆 / 갈참나무 시켜 / 웃음 서너 장 / 발등에 떨구신다 / 서산 노을도 / 비탈의 황토 / 더욱 붉게 물들이며 / 오냐 그렇다고 / 고개 끄덕이시고……."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이재무 시인이 1987년에 발표한 시 '벌초'다. 서른 넘은 나이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벌초하는 장면을 마치 몸단장해드리는 것으로 묘사했다. 정성스럽게 어머니의 손톱, 발톱을 깎아드리니 어머니 역시 무덤 옆의 갈참나무와 서산 노을을 시켜 아들에게 화답하는 것 같은 감응을 형상화했다.
평범한 시어들로 벌초하는 아들의 내면 정경과 외면 풍경을 매우 그럴싸하게 그렸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벌초하는 아들과 망자 사이의 교감과 감응의 형식에 있다. 벌초하면서 아들은 어머니를 새롭게 만나고 어머니의 정을 거듭 확인하고 인정받는 기쁨과 감사를 느낀다.
30여 년이 흐른 요즘 벌초 풍경은 어떤가. 우선 '무딘 날 조선낫'이 날카로운 예초기로 바뀌었다. 여전히 어머니 산소를 찾아 몸단장해드리는 아들도 있지만, 벌초 대행업체들도 많아졌다. 집안에 따라서는 같은 날 모여 문중의 벌초를 함께 하기도 한다.
그 어떤 경우이든 이재무의 시에서처럼 소박하고 허심탄회한 교감과 감응의 지평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건 왜일까. 그 시절보다 훨씬 바쁘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진 탓일까. 아니면 전통적인 효(孝) 관념이 점차 흐려지고 있는 까닭일까.
그 누구보다도 조상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헤아리고 실천하신 가친께서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온몸으로 효를 백행의 근본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대단히 죄송하게도, 나는 그 가르침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많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해마다 특히 벌초 때만 되면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집안사람들이 이럴 때라도 만나 직접 묘역을 살피면서 집안 대소사도 의논하고 정도 나누자며, 한날 벌초를 해온 지 벌써 여러 해 지났다.
추석 2주 전쯤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대개 9월 초이기 십상이다. 나로서는 개강 직후의 번잡함과 심리적 부담이 많을 때여서 벌초를 위해 주말 전체를 바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런 스트레스나 불가피한 학회 출장 때문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이런저런 눈치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니 정작 벌초를 가더라도 이재무 시인처럼 망자의 고개 끄덕임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9월 초의 주말을 벌초에 바치기 어려운 사정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 힘들지만 의무감으로 모여 벌초한다. 그러면서 오지 않은 사람 험담도 하고, 이 힘든 벌초를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계속하겠냐며 장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효와 가문 중시 문화의 전통 속에서 서로 다투어 명당자리를 구하고 더 넓고 화려하게 묘역을 가꾸려 해온 경향은 공공성의 측면에서 재고되어야 한다는 토론도 오간다.
우리 후손들에게 묘지가 대부분인 국토를 물려주고 그 죽음의 공간을 벌초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게 할 것인지, 아니면 죽음의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지혜를 마련할 것인지 결단해야 하는 시점이 왔는데도, 서로 눈치 보느라 그 일을 못 한다는 논변도 있다. 정녕 쉽지 않은 문제다.
벌초를 다녀온 지난 주말 내내 복잡한 심사였지만, 공동 벌초를 통해 사자(死者)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살아 있는 공동의 담론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감했다.
글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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