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마해송의 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1923)은 슬픈 현실에서 길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다. 남쪽나라 바닷가에 ‘바위나리’라는 오색영롱한 꽃이 피어난다. 바위나리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세상에 제일가는/ 어여쁜 꽃은/ 그 어느 나라의 무슨 꽃일까./ 먼 남쪽 바닷가/ 감장돌 앞에/ 오색 꽃 피어 있는/ 바위나리지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애타게 친구를 찾고 때때로 운다.
어느 날 하늘나라에서 그 울음소리를 들은 아기별이 임금님 몰래 내려와 바위나리를 찾는다. 아기별은 바위나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놀다가 하늘 문이 닫히기 직전인 새벽녘이 되어서야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다음 날 밤에도 남쪽 하늘에서 가장 먼저 뜨는 아기별은 바위나리에게 내려온다. 이렇게 해서 둘은 정이 들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답던 바위나리가 병들게 된다. 아기별은 병든 바위나리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다가 그만 하늘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자 하늘나라 임금님은 아기별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린다. 그렇게 아기별을 만나지 못하게 된 바위나리는 점점 더 시들어가다가 어느 날 바람에 날려 바닷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아기별은 슬퍼서 매일 울다가 그만 임금님에 의해 하늘나라에서 추방된다.
동화의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하늘에서 쫓겨난 아기별이 떨어져 빠진 곳이 마침 바위나리가 날려 들어간 그 바다였고, 그 후로도 그 남쪽나라 바닷가에는 해마다 아름다운 바위나리가 피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서술자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바다를 들여다본 일이 있습니까?”, “바다는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게 밝게 보이는데 ‘웬일’일까요?” 그리고 그 대답이 일품이다. “그것은 지금도 바다 밑에서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고 있는 까닭이랍니다.” 이 상상력, 다시 말해 오로지 바위나리를 위한 아기별의 사랑이 하늘에서 추방되면서 잃었던 빛을 회복해 다시 환하게 빛나게 되었다는 상상력에 무척 감동하고 고무됐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아기별이 빠져 그 별빛으로 환하게 비치는 환상적인 바다 이미지는 그때까지 바다를 직접 보지 못했던 내게 거의 원초적인 인상에 가까웠다. 그 아기별은 하늘로부터 추방되었는데, 어찌하여 그 빛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어린 나는, 아마 그 누구보다 먼저 바위나리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열린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엮어나갔던 것 같다. 어쨌든 이 두 가지는 어린 시절 내게 무척 의미심장한 귀감으로 다가왔다. 남의 울음을 먼저 듣는 마음의 귀와 어둠을 환히 밝히는 빛을 온몸으로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 그러면서 스스로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힘.
어린이들에게는 이를 포함한 긍정적 에너지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작가가 바로 마해송이었다. 올해는 그런 어린이의 긍정 에너지를 재충전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많이 방전된 것 같아 다시 떠올려본다.
글 · 우찬제 (문학비평가 · 서강대 교수) 2015.2.9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