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세월 훌쩍 뛰어넘어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내다
■ 맛있는 한옥 민박 3선
1. 강릉 선교장
강원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 제5호)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고택이다. 옛날에는 이 집의 문 앞까지 경포호가 찰랑거렸다고 한다. 당시에 배다리, 즉 선교(船橋)를 놓아 호수를 건너다녔다고 해서 ‘선교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집은 규모가 가장 큰 전통 민가로도 유명하다. 조선시대 민가로는 최대 규모로 지을 수 있는 99칸의 전형적인 양반 주택이다.

▷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
선교장은 효령대군(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님)의 11대손인 이내번이 1703년에 처음 지었다. 그는 원래 전주에 살다가 강릉시 저동으로 옮겨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이후에도 선교장의 가세가 꾸준히 번창하면서 사랑채인 열화당, 정자인 활래정 등이 중건됐다. 오늘날의 선교장은 조선 상류층 주택의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준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운치가 있고 기품이 넘치는 고택이다.
선교장은 입장료를 내고 구경만 하고 돌아서는 집이 아니다. 누구나 하룻밤 머물면서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방마다 크기와 형태, 대관료(숙박료)도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선교장 경내의 가승음식점 ‘연(蓮)’에서는 300여 년에 걸쳐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갖가지 별미를 한 상 푸짐하게 차려준다. 숙박 손님들은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한 저녁식사(초당두부 정식)와 아침밥(황태국 정식)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 '연'의 한정식 상차림. 선교장에 전해오는 가승음식으로 차려낸 밥상이다.
문의 및 예약 033-646-3270(숙박), 033-648-5307(가승음식점). http://www.knsgj.net
2. 정읍 송참봉조선동네
110여 년 전에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가득했던 전북 정읍군 이평면 청량리에 있다. 당시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전봉준 장군의 옛집(사적 제293호)이 지척이다. 송참봉조선동네는 수백 년의 내력을 이어온 전통마을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송 참봉’ 송기중 씨가 수십 억 원의 사재를 털어 조성한 전통문화 체험장이자 관광휴양지이다. 송 참봉은 애초부터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조선 말기의 전통가옥을 고스란히 되살린 마을을 조성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 조선 말기의 전통가옥이 고스란히 재현된 송참봉조선동네의 한 초가
송참봉조선동네를 둘러보는 것은 짧은 시간여행이나 다름없다. 10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거슬러서 조선시대의 어느 마을에 들어선 듯하다. 이곳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30여 채 전통가옥에는 감나무집, 달근네, 쌍금이네, 참봉집, 월산집 등의 정감 넘치는 이름이 붙어 있다. 마을 한복판에는 주막과 전통혼례식장, 우물 등도 있고 마을 한쪽의 커다란 닭장에는 거위, 오리, 닭, 칠면조 등이 모여 산다.
송참봉조선동네는 조선 말기의 소박한 서민 동네답게 숙식비가 저렴한 편이다. 1인당 1만 원 선이다. 예컨대 4인실은 4만 원, 6인실은 6만 원을 받는다. 대신에 전통초가의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해야 된다.
방바닥은 절절 끓어도 방안 공기는 서늘하다. 실내 화장실도 없다. 난방뿐만 아니라 밥도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서 짓는다. 그러니 밥맛이 좋다. 밥값도 놀랍도록 저렴하다. 대략 15가지 이상의 반찬이 깔리는 참봉밥의 기본상(2인 분)이 1만2000원이다. 참봉밥만으로도 푸짐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해물부추전이나 손두부, 돼지편육 중 한두 가지를 추가한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삶을 늘 소망했던 조선시대 서민들의 꿈이 이곳에서는 완벽한 현실이 된다.

▷ 송참봉조선동네의 참봉밥 상차림
문의 및 예약 063-532-0054, http://www.folkvillage.co.kr
3. 산청 사양정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은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전통마을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남사예담촌’으로도 불리는 이 마을에는 밀양박씨, 성주이씨, 진양하씨 등이 조상 대대로 살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사양정사, 이씨고가, 최씨고가, 이사재 등의 고택이 즐비하다. 그중 상당수가 20세기 초에 지어진 부농 주택이다.
남사마을 내에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담장(등록문화재 제281호)이 3.2km나 뻗어 있다. 예스러운 담장을 따라서 이어지는 골목길의 정취가 일품이다. 주민들은 고려시대에는 왕비를 배출했고, 고려 말의 유명한 문인 강회백과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 등이 이곳 출신이라며 마을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 길에 오른 이순신 장군이 남사마을 이사재에서 하룻밤 묵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1700년대에 건축된 이씨고가이다. 하지만 가장 위엄 넘치는 집은 1920년대에 지어졌다는 사양정사이다. “집주인이 무반(武班) 출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형이 권위적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이 집은 원래 정덕영이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가운데 대청 양쪽에 각각 2칸, 1칸 크기의 방이 있다. 권위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하룻밤을 머무는 동안에는 오히려 내 집처럼 편안하다. 밖에 듬직한 보초를 세워두고 하룻밤을 보낸 듯하다.

▷ 남사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통가옥 민박집인 사양정사
사양정사는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민박집이다. 집 자체의 예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맛있는 밥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옛 선비의 밥상처럼 정갈하고 소박하면서도 깊은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밥상을 받으려면 주인아주머니에게 미리 부탁해야 된다. 이렇다 할 만한 별미는 하나 없는데도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그야말로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잘 차려진 밥상이다.

▷ 사양청사의 소박하고도 맛깔스러운 아침밥상
문의 및 예약 055-973-6052
그곳에 찾아가면 목은 이색 삶의 자취가

▷ 영덕 괴시리 전통마을의 아름다운 설경
■ 영덕 괴시리 전통마을
경북 영덕 강구항은 영덕대게의 본고장이다. 대게 살이 실해지는 이맘때쯤이면 영덕대게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어항의 새벽은 늘 활기 넘친다.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어항의 첫새벽을 여는 어민들의 억척스러운 모습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강구항에서 축산항, 대진항을 거쳐 대진해변까지 약 28km의 구간에는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근래 ‘영덕대게로’라 개명됐지만, 여전히 ‘강축해안도로’로 불리는 이 길은 어디서나 창망한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굽잇길을 돌아설 때마다 불쑥 나타났다가 총총히 뒷걸음치는 어촌과 포구의 정경도 인상적이다.

▷ 이문열 소설 <젊은 날의 초상>의 배경으로 알려진 대진해변의 겨울 바다
대진해변 삼거리에서는 영덕대게로와 고래불로, 예주목은길이 갈린다. 그 가운데 예주목은길을 따라서 영해 방면으로 1km쯤 가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로 빼곡한 마을 어귀에 다다른다. 이곳이 바로 영덕군 영해면의 괴시리 전통마을이다. 1260년(고려 원종 1년)에 함창김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뒤로 영해신씨, 신안주씨 등이 정착했다. 1630년(조선 인조 8년)에는 영양남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성씨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감으로써 오늘날과 같이 영양남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괴시리는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1328~1396)의 고향이다. 원래 지명은 근처의 연못 이름을 따서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렸다. 오랫동안 중국 원나라에 머무르다 귀국한 이색이 고향 호지촌과 중국 괴시마을이 비슷하다고 해서 괴시(槐市)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은 호지마을이라는 지명을 애용한다.
30여 채의 전통가옥
마치 외갓집 방문한 듯
괴시리에는 목은 이색의 자취가 곳곳에 산재한다. 마을 안쪽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목은의 옛 집터에는 근래 ‘목은이색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마을 부근의 산등성이에는 그가 바다를 굽어보던 관어대도 있다. 괴시리에서 멀지 않은 ‘고래불’이라는 해변도 목은이 관어대에 올라 고래들이 튀어 오르며 헤엄치는 광경을 보고 붙인 지명이다.
현재 괴시리 전통마을에는 3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괴시파종택, 물소와고택, 경주댁, 대남댁, 영은고택, 주곡댁 등을 비롯한 고택들은 서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동쪽에 솟은 망일봉과 망월봉 자락에 등을 기댄 탓이다. 그래도 시야가 좁거나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서쪽에 경북 동해안의 3대 평야 중 하나인 영해평야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마을 뒤편의 나직한 언덕에 올라서면, 고택들의 기와지붕 너머로 영해평야의 너른 들녘과 낙동정맥의 우람한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을의 고택들은 대부분 개방돼 있다. 집주인들은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어느 누구라도 집 구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 '목은사색길'이 지나는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축산항의 동틀 녘 풍경
괴시리 마을을 거쳐가는 영덕 블루로드의 ‘목은사색길’을 아예 걸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영덕 축산항과 고래불해변 사이의 17.5km 구간을 잇는 이 길은 괴시리 뒤편의 울창한 솔숲과 마을 안쪽의 흙담 길도 두루 거쳐간다. 괴시리 다음의 경유지인 대진항부터 고래불해변까지 6.4km 구간에서는 탁 트인 바다와 바닷가 솔숲을 따라 걷는다.
이 길에서 지나는 대진해변은 소설가 이문열이 쓴 <젊은 날의 초상>의 배경이기도 하며, 그 풍경이 퍽 역동적이다. 하얀 포말을 날리며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위세가 대단하다. 반면에 이곳 해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송천 물길은 잔잔하기 그지없다. 작은 호수로 변신한 송천 하구에서는 고니, 청둥오리, 고방오리 등의 겨울철새가 한가로이 헤엄친다. 참으로 평화롭고 건강한 자연이다. 뭐든지 간에 살아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숙박
괴시리 전통마을의 대남댁(054-734-1546)에서는 민박이 가능하다. 괴시리에서 가까운 대진항과 대진해변 주변에는 파도소리(010-6363-2766), 바다사랑(010-6733-0454), 바다이야기(010-3819-0736), 초록빛바다(0505-314-2000), 동해바다(054-734-5698) 등의 펜션이 있다.
맛집
영해면 소재지에 위치한 대구갈비(054-732-0328)는 외지 사람들도 일부러 찾는 한우갈비 전문점이고, 해물이사람잡네(해물철판볶음, 054-732-3868)는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대진해안도로변에는 해변회식당(054-732-0679), 대구횟집(054-732-9462), 돌고래식당(054-732-2805) 등을 비롯해 횟집이 여럿 있다. 고래불해변의 북쪽 끝에 위치한 정직한바다횟집(054-733-2037)은 어부 내외가 운영하는 횟집이다. 싱싱한 생선회와 영덕대게를 비교적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글·사진 양영훈(여행작가) 201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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