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93년 12월 22일 저녁 옛 백제 나성(羅城)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 논바닥 제3 건물지 중앙 칸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세상이 깜짝 놀란 백제의 보물 금동 대향로가 출토됐다. 높이 61.8cm, 몸통 지름 19cm, 무게 11.85kg의 이 대향로는 규모나 예술성에서도 다른 향로와 비교할 수 없는 걸작이다. 뚜껑과 몸체, 다리로 구성된 향로는 각각이 따로 구리합금 주조로 만들어졌고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출토 당시 목곽 수조에 기와로 여러 겹으로 싸여 있던 정황으로 보아 누군가가 급하게 땅에 파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왜 향로를 이곳에다 감춰두었을까? 1300년 동안 깊은 잠에서 깨어난 향로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워지지 않는 나라
이제홍 지음 | 푸른향기 | 272쪽 | 1만3000원
며칠간 비가 내린 후 모처럼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7월 초 어느 날, 백련이 활짝 피어 있는 부여 궁남지 연꽃 밭 물속에서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에 근무하던 남자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망한 남자는 금동 문화재에 대해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였다. 그중에서도 금동 대향로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이희도 팀장은 누군가가 피살자의 목을 부러뜨렸고, 피살자는 본능적으로 달아나다 연꽃 밭에 빠지면서 숨을 거둔 것을 알아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발자국 외에 범인을 짐작할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백제사를 연구하고 있던 서민준이다. 그는 금동 대향로가 두 개였을 것이라고 말해 피해자와 전화로 심하게 다툰 후 보름 동안 중국 내몽고 자치주 츠펑이라는 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츠펑은 황하 문명보다 천 년은 앞섰다는 홍산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서민준은 평소 츠펑에서 생겨난 홍산 문화가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흉노와 고조선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냈고, 고조선은 부여, 고구려, 백제에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조사를 받고 나온 서민준은 신문을 읽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문에는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공공연하게 참배하고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일본의 태도도 문제지만 중국의 태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해지고 있네. 당장이야 큰 문제는 없겠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화근이 될 텐데…."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금동 대향로는 여전히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책을 넘기며 소설 속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백제의 기백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백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원대한 꿈을 가졌던 국가'였다고 말한다. 일본이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왜곡하려는 노골적인 시도와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 역사를 침탈하려는 실태를 고발한다.
글 · 윤융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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