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며칠 전 아내가 짧은 일정의 몽골 여행에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마중나가서 내가 물어본 건 “늑대 봤어?”였다. 돌아온 대답은 늑대는 코빼기도 못 봤다는 것이다. 당연하겠지. 몽골이라고 야생늑대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인데, 벌건 대낮에 관광객 앞에 늑대가 나타날 리가 없을 것이다. 늑대 대신 아내는 말을 타며 몽골의 초원을 달렸다고 한다.
일행 중 어떤 남자가 말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며 개들이 모여 있는 곳 가까이 갔는데, 사나운 개들이 말을 쫓아오는 바람에 말이 혼비백산 달아나느라 내리막길에서 속력을 줄이지 않았단다. 그러다간 죽을 것 같아서 그 남자가 말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약간의 찰과상에 그쳤다니 천만다행이었다고. 말 위에서 바라보는 몽골의 초원은 무한한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건 가서 타보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어떤 감정이라며 말이다.
초원이 아스라이 남아 있는 아내의 눈을 건너다보며 나는 초원을 내달리는 늑대 무리를 상상했다. 내가 늑대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늑대토템>이라는 책 때문이다.
사실 늑대에 대한 관심은 미국 옐로스톤에서 살아가는 늑대 무리와 불곰 간의 세력 다툼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이후 늑대라는 동물이 매우 영리하며 조직적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헌신적이기도 한 진화된 생명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김경주 시인의 시 중에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라는 구절을 만났고 늑대를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이 어쩔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출간한 <늑대-The Wolf>라는 책을 계약해 국내에 소개해 보고자 준비하게 되었다. 지인에게 이 말을 했더니 그는 “아니 늑대라면 당연히 <늑대토템>을 봐야죠!”라며 나에게 지청구를 주는 게 아닌가.
그래서 만나게 된 책이 <늑대토템>이다. 이 엄청난 책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몽골 초원으로 하방당한 지식인 청년이 겪은 늑대에 대한 놀랍고도 경이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비록 소설이지만,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몽골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깨우친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이 이 책의 백미는 1권의 3장과 4장에 걸쳐서 나오는 늑대의 사냥 장면이다.
10여 마리의 늑대 무리가 1천여 마리의 가젤 떼를 노리고 있다가 일망타진하는 내용이 그 기획 단계부터 처참한 결론까지 매우 실감나게 묘사되는데, 마치 영화의 잘 짜인 플롯처럼 그 가젤 떼들이 늑대들이 몰아넣는 눈덮인 얼음무덤 속으로 빠지는 장면에 다다르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몽골인들은 늑대를 숭상한다. 초원의 풀을 싹쓸이해 가는 가젤의 개체 수를 한계선에서 조절해 주는 것이 바로 늑대이기 때문이다. 몽골의 정신, 세계를 제패한 몽골군의 전략전술도 다 늑대에게서 왔다고 이책은 말하고 있다.
책에 세밀화처럼 그려진 늑대의 삶을 읽어나가는 순간 우리는 그 놀라운 인과관계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증명해 주는 증거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수없이 많이 말이다.
글·강성민(글항아리 대표) 2014.08.18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