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걷기여행] 충남 서산 아라메길 1구간

1

 

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20킬로미터라고 한다. 매일 50리 길을 느릿느릿 걸어 올라와야 하는데, 요즘은 따스한 날씨덕에 봄꽃들이 엄청 잰걸음으로 와서 동시다발로 핀다. 덩달아 봄꽃 쫓는 나그네 발걸음도 빨라졌다. 3월 마지막 일요일, 서산 아라메길 1구간은 온통 꽃잔치다.

1구간의 시작은 유기방가옥이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가옥은 내 고향 당진시와 가깝게 자리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고향 동무와 함께 걸었다. 동무는 그 사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돼있었다. 동무가 생기니 길에 대한 관심도 조금 달라진다. 세월은 봄꽃 이름보다 봄나물 이름을 더 많이 알게 했다. 잠시 걷기를 멈추고, 동무와 한적한 들판에 앉아서 밥상에 올릴 나물 한바구니 캐고 싶은 날들이다.

2

수선화와 독특한 토담이 유명한 유기방가옥

유기방가옥은 고택을 감싸고 있는 토담이 독특하다. 컵을 엎어놓은 ‘∩’ 모양인데, 집 뒤 비스듬한 야산을 그대로 활용해서 담을 쌓았다. 산을 깎아 축단을 세우지 않았기에 뒤란이 평평하지 않고 약 25도 정도 경사가 있다. 마치 집이 산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이 가옥은 독특한 집 모양뿐만 아니라 수선화로도 유명하다. 토담 뒤 야산이 수선화 정원이다.

가옥 관리인인 유기방 씨가 10년 전부터 가꾼 정원이다. 해마다 집 주변에 무리지어 핀 수선화 구근을 떼어내 옮겨 심으면서 꽃밭을 넓혔다. 곱게 가꾼 수선화를 한눈에 보려면 토담 뒤 소나무 아래가 포인트다.

3

토담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난 길로 향한다. 옛날에 이 마을 사람이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비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무려 330년을 살았다고 한다. 둘레가 246센티미터, 높이가 20미터다. 비자나무는 남부지역이나 제주도의 해발고도가 낮은 지대에서 자란다. 어떻게 이곳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딱딱한 잎을 살펴보며 세월의 깊이를 가늠할 뿐이다.

선정묘를 지나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 앞에 선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로 추정한다. 이른 아침 누군가가 벌써 다녀갔는지 석불 앞에 생쌀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복을 빌기 위해 놓은 제물이 참새에게는 오늘 한 끼 밥일 것이다. 우리는 새들이 날아올 수 있게 길을 재촉한다. 길은 석불 뒤 몇 그루의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대나무를 벗어나자 멋진 토담이 보인다. 유상묵가옥으로 이어지는 길은 보랏빛 제비꽃이 군락을 이뤘다. 가옥을 둘러보고 마을 도로를 따라 걷는다.

4

아주머니 한 분이 밭두렁에 앉아 민들레 나물을 뜯어 박바가지에 담는다. 아주머니가 밟고 있는 밭두렁은 들꽃밭이다. 냉이는 흰 꽃을 피우고, 광대나물은 진홍색 꽃을 피운다. 봄까치풀은 파란 꽃을 피웠다. 봄까치풀은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는 까치처럼 들녘에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까치 같은 존재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광대나물 꽃말은 ‘그리운 봄’이다. 꽃 이름조차 봄을 알리는 전령들이다.

여미리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전라산 방향으로 걷는다. 아라메길 1구간은 방향표시 안내판이 잘돼 있다. 안내판과 리본만 따라가도 종착점 해미읍성에 다다를 수 있다. 전라산 방향으로 따라가는데 도로 아래에 손바닥 크기의 머위가 군락을 이룬다.

“머위는 새싹이 돋아나고 바로 잎이 쫙 펴지는 시기에 먹는 게 보약이래. 이때가 가장 쓴맛을 내지만, 입에 쓴 게 몸에 좋다는 말도 있잖아.”

“그려, 손바닥 만할 때에 쌈 싸 먹으면 쌉싸래한 게 맛있지.”

5

마애삼존불 백만불짜리 미소는 아침 30분만 허락

역천으로 향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 천길이다. 천길 밑 개천 옆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운산교까지 800미터다. 운산교부터 역천제방이 시작된다. 용현계곡 입구까지 가게는 없다. 운산면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서 물과 간단한 간식을 준비한다.

유기방가옥에서 운산교까지 약 2.9킬로미터이고, 운산교에서 미평교까지 1.8킬로미터이다. 제방은 일부 구간만 콘크리트가 깔려 있고 딱딱한 흙길이다. 미평교에서 쉰질바위 방향으로 걷는다. 역천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굵은 철봉을 세워놓았다. 그 옆으로 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 50미터쯤 나 있다.

이 길을 벗어나면 역천과 논 사잇길이다. 길은 다시 고풍터널을 지나게 한다. 고풍터널을 지나면 바로 고풍터널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장은 사거리인데, 터널에서 직진하는 길이 지방도 618호 봉운로다. 우리는 오른쪽 군장동1로를 따라 걷는다. 군장동1로는 고풍저수지 뒷길인데, 몇 개의 펜션이 눈에 띈다. 1.1킬로미터 정도 걸으면 고풍저수지와 봉운로를 만난다.

6

고풍저수지를 따라 걷는 500미터 길은 인도가 협소하기 때문에 차를 조심하며 걷는다. ‘아라메 솔바람길 종합 안내도’를 살펴보고 마애삼존불상으로 향한다. 용현계곡 입구인 이곳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식당도 있다.

백제 마애불은 충청남도 지역에만 남아 있는데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 예산 사면석불이다.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상은 국보 제84호로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암벽에 조각돼 있다. 가운데 석가여래를 기준으로 오른쪽 관음보살은 입상, 왼쪽 미륵보살은 반가사유상이다. 미륵보살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팔을 굽혀 오른쪽 뺨에 손가락을 살짝 댄 채 사색에 잠겨 있는 자세다. 삼존불은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서 온화한 미소를 띠거나 때로는 개구쟁이 같은 얼굴을 한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백만불짜리 미소는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볼 수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에서 1.3킬로미터 계곡을 따라 걸으면 보원사지이다. 보원사는 통일신라시대 화엄 10찰 중 하나로 알려졌다.

1천명분의 쌀을 씻었다는 석조가 있는 것을 보아 1천여 명의 승려가 머무는 무척 큰 절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석탑 뒤에 개심사로 이어지는 숲길을 오른다. 보원사지 뒤편 숲길 초입부터 개심사 산신각까지 쉬엄쉬엄 가더라도 약 1시간 20분이 걸린다. 이 길은 오르막이 많아서 힘들다. 좀 수월하게 걷고 싶으면 개심사에서 보원사지로 걸어오는 게 좋다.

7

성왕산 자락 개심사 주차장엔 봄나물 난전

개심사는 성왕산 자락에 자리한다. 성왕산은 코끼리를 닮았는데, 이 코끼리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못 중앙에는 외나무 다리가 놓여 있다.

8외나무 다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해탈문이다. 개심사는 흰겹벚꽃이 유명하다. 작은 절집에 겹벚꽃이 피면 얼마나 웅장한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꽃은 4월 말에 피기 시작해서 5월 5일경에 만개한단다.

우리는 개심사를 등지고 소나무숲을 벗어난다. 개심사 주차장에는 봄나물이 난전을 펼쳤다. 취나물, 버섯, 고들빼기, 냉이, 달래, 머위, 민들레 등 각종 나물이 말간 향내를 풍긴다.

주차장을 끝까지 내려오니 오학리쉼터, 해미읍성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해미읍성까지 5.2킬로미터다. 이 표지판 밑에는 아라메길 이용자 안전수칙이 나와 있다. ‘2~3명이 동행하여 걷기’가 눈에 띈다. 지금까지 온 길과 다르게 그만큼 호젓하다는 것이다.

다시 출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3시 50분이다. 해미읍성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6시 25분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길이다. 초보자는 부분 걷기를, 많이 걸어본 분에게는 완주를 추천한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4.14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