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호호호, 그땐 뭐 하루가 멀다 하고 땅이 올라와서 머리를 찧곤 했지. 일주일에 사나흘은 필름이 끊긴 상태였다고나 할까.”
50대 중반의 주부 차 씨는 처녀 시절 주변에서 알아주던 ‘주당’이었다. 늦은 저녁시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난 골목길을 갈지자로 걸을 때면, 땅이 올라오고 담벼락이 달려들었다. 다른 행인들이 보면 만취해 넘어지기를 거듭하는 것을 그 자신은 땅바닥이 올라오는 걸로 느꼈다고. 술에 취하지 않더라도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는 누구나 만취한 차 씨와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정상적인 보통사람들이라면 깨어 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의도적인 움직임은 물론 심장의 박동이나 숨쉬기 같은 무의식적인 움직임까지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데 누군가가 살짝 뺨에 손을 갖다 댄다고 가정하자.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뺨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하지만 술에 크게 취했을 때는 차 씨처럼 땅이 올라와서 이마를 가격하는 것으로 우리의 뇌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자신이 한 행동인지, 타자의 움직임인지를 제대로 구분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데 정상인들도 자신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술 등 약물에 중독되지도, 신경질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의 몸동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유아들의 ‘발작성 경련’이 대표적 사례다. 젖먹이들을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경기가 난 듯 다리나 팔을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목격했을 것이다. 처음 이런 현상을 경험한 초보 엄마라면 적잖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아이 몸에 “무슨 이상이 있나?” 하며 근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에 빠진 젖먹이의 경기 같은 사지 동작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이뤄진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아는 자신의 팔다리가 발작적으로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오와 대학 연구팀은 생쥐 새끼를 이용한 실험에서 발작적 움직임이 일종의 ‘학습’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팔다리의 움직임이 뇌신경을 자극해 뇌로 하여금 팔다리의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를 공부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영어 관용표현 가운데 ‘tail wagging the dog’라는 게 있는데, 딱 이런 상황과 어울린다.
개의 뇌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몸통을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셈이다. 다시 말해 유아의 발작적 움직임은 뇌가 팔다리에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팔다리가 뇌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유아의 발작적 몸동작은 팔다리가 뇌를 ‘교육’시키는 것인 만큼 뇌가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을 리 없다.
그러고 보면 옛 어른들은 일찌감치 유아의 발작적 몸동작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젖먹이들의 팔다리가 발작적으로 움직일 때, 옛날 할머니들 가운데는 “아이가 크느라 그러는 것”이라며 갓난아이를 둔 새댁을 안심시키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성장을 위한 학습이라는 할머니들의 해석이 현대과학으로 증명된 케이스인 셈이다. 발작적 행동까지는 아니지만 보통사람들이 뇌로 인지하지 못하는 몸동작은 주로 자는 시간에 나타난다. 잘 때 뒤척이는 동작이 단적인 예다.
자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보통사람이라면 한 시간에 최소한 한 번 혹은 두 번쯤 몸을 굴린다. 자면서 왜 몸을 굴리는지, 정확하게 메커니즘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자들은 혈액순환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몸의 특정부위가 지속적으로 눌려 있거나 접혀있을 경우 혈액의 흐름이 원활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생의 3분의 1가량을 잠으로 보낸다. 게다가 발작적 경련을 경험하는 유아기와 더불어 술에 취하거나 질병에 걸려 뇌의 인지가 정확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개인에 따라서는 어쩌면 살아 있는 시간의 절반 안팎 동안에 ‘자신도 모르는’ 행동 혹은 동작을 하면서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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