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감수성이 예민한 스물여덟 살 청년 시인이 파리로 온다. 덴마크의 고향을 떠나 살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이미 부모를 여읜 그는 철저하게 외톨박이다. 그의 눈은 인생의 슬픈 뒷모습이나 패배자의 우수 따위에 이끌린다. 그의 이름은 말테 라우리츠 브리케이다. 말테는 파리에서의 첫 느낌을 이렇게 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에 모여드는데, 내게는 그것이 도리어 죽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삶 속에서 죽음의 현상을 읽어내고 웃음 속에서 슬픔의 풍경을 읽어내는 시인 말테는 그 모든 죽음과 비극의 풍경을 감당하며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려 한다. 빈곤과 절망과 고독 속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무척 고독하다고 느끼지만, 고독을 병든 상태에서 건져낸다. 고독이야말로 사랑의 시금석이라고 말했던 이가 바로 릴케였다. 그런 만큼 릴케의 말테 역시 뼈저린 고독의 정황에서 ‘쓰는 행위’를 통한 자기승화를 도모한다. 말테에게 고독은 문학적 영혼의 시금석이었다. 그렇다고 쓰기를 결코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젊어서 시를 쓰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 쓰는 것을 여러 해 기다려 오랜 세월, 자칫하면 늙은이가 될 때까지 깊이와 향기를 모아서 써야 한다. 그렇게 한 뒤라야 결국 겨우 10행 정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시는 감정이 아니고 (중략) 체험이기 때문이다.”
10행 안팎의 정말 좋은 시를 얻기 위해, 그것을 위한 좋은 체험을 얻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세상 순례에 나서고, 또 그것을 수기 형태로 적어 나간다. 그에게 순례란 모든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아주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말테는 모든 것을 보고 배우겠다는 마음의 준비로 싸구려 파리생활을 견딘다. ‘아직 절망은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시 한 번 ‘아직 절망은 아니다’라고.”
비록 현실적·경제적으로는 곤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말테였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영혼의 양식을 넉넉히 준비하려 했다.
릴케 혹은 릴케의 말테 시절에 비해 요즘 체험의 양상은 현격하게 달라졌다. 특히 디지털 사이버스페이스로 인해 21세기의 ‘말테들’은 그야말로 단속(斷續)적으로 이런저런 경험을 하지만, 어떤 누구도 그것을 진정 ‘좋은 체험’에 값하는 ‘세상 순례’라고 자부하기 어렵다. 또 서정시인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의 미학적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깊이와 향기를 모아서’ 열 줄 남짓의 ‘좋은 시’를 쓰려고 했던 옛 장인정신을 예술적으로 실천하려는 이들도 줄어들거나 변두리로 밀려나기 일쑤다.
더욱 나쁜 것은 생산적 대안 탐색과는 거리를 둔 채 부정과 반대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좋은 시’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 밥을 짓지 않는다. 그러고는 밥이 질다 되다, 탓한다. 부수는 게임은 쉽다. 그러나 쌓아 올리는 게임은 어렵다. 그렇다고 다 부수기만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그 누구라도 말테처럼 살기 힘들다. 영혼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삶의 지도를 열어나갈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테 같은 인물의 초상이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 절망은 아니다”라고 거듭 외치면서 자기 영혼의 길을 끊임없이 열어나갔던 말테. 꾸준히 자신만의 시를 빚어내고 특유의 맛을 지닌 밥을 지으려 했던 옛 시인의 초상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감상적 향수 탓일지도 모른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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