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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최선 다하는 ‘완생’의 꿈

청마의 푸른 기상으로 시작한 갑오년 한 해가 저문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힘든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고난으로 인해 올 한 해 그 누구도 편하기 어려웠다. 소망은 가망 없는 희망처럼 뒷걸음치기 일쑤였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도 봉인된 것처럼 아득했다. 구직자들의 고난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의 삶 또한 고단함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았다. 웹툰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생>이 드라마로 방영돼 폭발적인 관심을 끈 이유도 그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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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난신고(艱難辛苦)’와 ‘다사다망(多事多忙)’. 한 취업포털에서 발표한 2014년 한 해를 축약하는 사자성어다. 점점 더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구직자들은 매우 힘든 한 해를 보내 ‘간난신고’를 뽑았고, 일자리는 있지만 너무 바쁘게 쫓기다가 제대로 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 많은 직장인은 ‘다사다망’을 뽑았다고 한다. 이어 구직자들은 근심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전반측(輾轉反側)’, 온갖 노력을 다했건만 소출이 없어 애쓴 보람이 없었다는 ‘노이무공(勞而無功)’, 자신을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었다는 ‘고조불탄(古調不彈)’, 외형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죽은 재처럼 되어 생기 없고 의욕 없이 무기력하게 보냈다는 ‘고목사회(枯木死灰)’ 등을 꼽았고, 직장인들 역시 ‘다사다망’에 이어 ‘간난신고’, ‘노이무공’, ‘고목사회’, ‘전전반측’, ‘고조불탄’, ‘고립무원(孤立無援)’ 등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올 한 해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동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암시하는 사례로 보인다. 우리 모두가 어쩌면 ‘미생(未生)’의 처지임을 환기하게 된다.

미생의 처지에서 그토록 힘들고 고단해도, 인생은 결코 ‘멈춤’의 시간이나 ‘리셋’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에 더욱 가혹하다. 디지털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잘 풀리지 않을 때 ‘리셋’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 그저 한탄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미생>에서 임시직인 장그래는 바둑으로 단련된 사람답게 이렇게 생각한다. 돌을 잃어도 바둑은 계속된다고. 그러기에 흔들리지 말고 바둑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에게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또 장그래의 상사 오상식은 말한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 봐라. 여기는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完生)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가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정답은 미리 마련돼 있지 않다. 오상식은 장그래가 정답은 몰라도 해답은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또 젊은 사람이 결코 취해 있지 않더라고 두둔했다. 상처받고 고단하고 희망이 없어 보여도, 의도치 않은 사석(捨石)이 생기더라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길을 열어가면서도 ‘큰 그림’을 보면서 ‘모두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저 만화이고 드라마일 뿐이라고. 현실에서는 비정규직 신입사원이 그럴 수 없다고. 물론 그런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완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장그래가 주는 감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에 있지 않을까. 그는 그 어떤 ‘간난신고’와 ‘다사다망’의 상황이 닥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아간다. 곧 새해다. 아직 미생의 처지에 있는 세상의 모든 우리들이 새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생에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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