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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그 진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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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랬다. 그는 진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진심이 다가왔고 진정성이 느껴졌다. 진심이 곧 감동이었고, 소박한 깊이가 예술이었다. 애써 무대를 꾸미려 하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더 음악에만 집중했다. 꽉 찬 반주없이 오로지 통기타 하나의 선율에 몰입하며 자기 노래를 실었기에, 그 자신의 온몸이 전달될 수 있었다. 중저음의 소리는 텅 빈 듯 충만을 노래했고, 꽉 찬 듯싶다가도 텅 빈 공허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 역설적인 텅 빈 충만의 세계에서 감동적인 소통은 이루어졌다. 그토록 하염없는 음유시인에게 많은 사람이 끌렸다. 매료됐다.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음악은 취향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헤비메탈에서 야성의 에너지를 얻어가고, 또다른 이는 재즈에서 생의 근원적 우수를 성찰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발라드에서 서정적 감수성에 취해보기도 한다. 세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개인의 차이나 지역적 분위기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취향이 형성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여러 원인에 따른 취향의 차이에도 때때로 우리는 다수의 공통 반응을 이끌어내는 각별한 사례들을 목격한다. 가령 극진한 진심은 통한다. 싱어송라이터가 포즈로 위장하지 않고 진정성을 온몸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장르나 취향을 넘어서 진심으로 끌림을 체험한다. 자기도 모르게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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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게다, 그는. 하지만 그런 마음이 어디 그만의 것일 수 있으랴. 포근한 위로. 동시대의 사람들이 갈급하는 어떤 것을 그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꼭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시작돼서가 아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자주 느끼게 되는 사정을 거듭 환기하는 것은, 요령부득한 일이 될 터이다. 포근하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시대의 그런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음유시인의 노래 <자랑>은 그렇게 늦가을 밤을 훈훈하게 달구었다.

무엇보다 <후회>에서 <자랑>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는 한결같았다.

그 어떤 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스타일과 창법으로 노래했다. 그에겐 노래하는 것이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하는 것이 또한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마음과 소리는 언제나 회통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통로에서 관객의 마음으로 가는 진정한 소통의 길을 열었다.

물론 실수도 있었고, 미치지 못하는 바도 없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제 노래-길을 열었다. 꾸밈없이 우직하게 노래하는데 그게 특별한 개성으로 빚어졌으니, 그 노래-길을 자랑해도 좋겠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알고, 할 수 있는 젊은이였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 했다. 가령 그는 고음은 잘 안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불현듯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렸다. 여기서 삼미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으면서, 우승을 목표로 했던 다른 팀으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삼미만의 자기 야구를 해보려 한 것으로 얘기된다. 그런 야구 철학은 이런 태도에서 형성된다. 첫째,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둘째, ‘세계는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다가 느림의 미학, 내지르기가 아니라 끌어안는 창법의 호소력 같은 요인들을 보태면, 이제 막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싱어송라이터로 탄생한 곽진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도 요긴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디 그뿐이겠는가. 틀에 박힌 스펙을 넘어서, 개성적인 스토리를 나름대로 찾아 구성해 나가는 많은 젊은이의 진정성을 믿고 싶고, 또 그 진심 어린 몰입의 순간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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