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곧 많은 비가 올 테고…

1

 

220년 전부터 살아온 아파트의 주택담보 대출금을 다 갚았을 즈음 재건축을 위한 철거명령이 내려진다. 그때 느닷없이 진짜 집주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던 와중에 아버지는 40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해 사망한다. 사건은 실족사로 처리되었지만, 이 사고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다른 주민들은 모두 이주를 마치고 갈 곳 없는 주인공 가족만 홀로 남겨진다. 예정대로 단전·단수 조치가 취해진다. 그리고 엄청난 큰물이 진다. 길이 끊기고 학교도 갈 수 없다. 아파트 권리를 사기당한 사회경제적 인재(人災)로 고립되었던 주인공 가족에게는 설상가상 홍수라는 수재(水災)로 고립이 가중된다. 김애란 소설 <물속 골리앗>의 이야기다.

설상가상, 악화일로는 계속된다. 당뇨를 앓던 어머니가 약이 다 떨어져 그만 절명하고 만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의 죽음까지, 어린 주인공은 홀로 부모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게다가 그치지 않는 폭우에 갇힌 상태에서 말이다. 어쨌든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막막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우리를 잊은 게 아닐까.” 불안의 늪은 깊어만 간다. 할 수 없이 나무 문짝으로 간이배를 만들고 어머니 시신을 거기에 태워 탈출을 시도한다. 물 위에서 허기를 때우려고 먹을거리와 사투를 벌이다가 그만 어머니 시신을 놓치게 된다. 얼마 후 다시 정자나무 뿌리에 단단히 박힌 채 부유하는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지만 인양에 실패한다.

날이 저물자 주인공은 어둠 속에서 물 위로 솟아 있는 타워크레인에 매달리게 된다. 살려달라는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다음날 다시 막막한 고립의 항해를 계속하던 그는 해질녘 한 타워크레인의 꼭대기에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앉아 있는 환각을 느끼며 그리로 기어 올라간다. 텅 빈 고요만이 오롯한 꼭대기에서 다시 한 번 주인공은 혼자 남겨졌음을 무섭고 서럽게 확인한다. 거기서 아버지의 죽음을 추체험(追體驗 :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낌)하면서 파랗게 질린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고립의 절정에서, 그럼에도 그는 “누군가 올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고공의 칼바람을 견딘다. 이렇게 <물속 골리앗>에서는 자연재해와 인재가 중첩된 비극적인 고립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춘기 어린 소년으로서는 홀로 감당키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 비극성이 높은 크레인처럼 고조된다. 과연 누군가 소년을 구하러 갈 것인가. 이런 소년의 처지가 단지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이겠는가.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이런저런 사연들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런 사연들이라면 이제는 좀 사양하고 싶다.

비가 많이 내린다. 걱정스럽다. 하염없는 폭우 속에서 김애란의 어린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했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어린 소년의 처지처럼, 재난을 겪을지도 모를 어려운 이웃들이 곁에 없는 지 살펴볼 때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쏟아진단 말인가.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6.30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