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비극적 운명의 고전적 절정이랄 수 있는 <오이디푸스왕>(소포클레스) 이야기 이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언제나 문제적이었다.
아버지는 가족 구성의 기본 축이면서도 가족에게 소외당하고, 가부장적 아버지이면서도 실은 ‘숨은 아버지’로 그려지기 쉬웠다. 특히 문화예술로 형상화된 아버지는 대개 일그러진 인물인 경우가 많았다.
소설가 최윤이 쓴 <아버지 감시>는 부자가 처음으로 해후하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남쪽의 가족을 버리고 월북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중국으로 망명한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둔 까닭에 남한에서 불안하게 살다가 프랑스로 유학, 거기서 식물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정착해 살고 있다.
아버지가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며 살아온 인물이라면, 아들은 그 이데올로기로 인한 불안과 상처 때문에 반이데올로기적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이 같은 아버지와 아들이 동구의 공산권이 몰락하던 시기에 파리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혈족의 운명적 만남임에 틀림없지만 거기에는 분단의 역사와 이산의 설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거리가 응축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아버지가 추구했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실패한 사회주의를 추종했던 부당한 아버지 때문에 철저하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다고 믿으며 아버지를 감시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비록 실패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부당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패했기 때문에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라는 자신의 신념만은 그대로 견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실체임을 아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페르 라 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코뮌 병사들의 벽을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부자가 코뮌 병사의 벽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이데올로기의 망령은 거두어지고, 둘 사이에 드리워졌던 이데올로기의 장벽도 제거된다. 이 소설에서 비판의 대상인 아버지는 부서지고 뒤로 숨어들면서 이질혼성적인 새로운 의미 맥락을 안내한다.
소설가 정영문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른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아들은 숨은 아버지를 찾아냈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둔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골몰한다. 그가 쓴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에서 주인공은 목사인 아들을 철저히 부정한다. 아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도 부정하면서 스스로 숨은 아버지가 된다. 정영문은 “항상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드러나지 않고 말하지 못한 것들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살다 보면 이상적 아들에 대한 욕망이 현상적 아들에 대한 실망감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경제성장 이후 한국의 부모들이 지나치게 자식에게 기대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의 담론과 연계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상상하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싶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6.16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