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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걷기여행] 대구 팔공산 왕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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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왕건길 1구간 시작점인 신숭겸 장군 유적지로 가는 택시 안에서 신숭겸 장군 동상을 스치듯 본다. 동상은 불로동에서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리는 파군재삼거리에 서 있다.

파군재는 신숭겸이 이끄는 고려군이 견훤군에게 패해 흩어졌다고 하여 파군재로 불린다. 신숭겸은 유적지 지묘동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지묘동의 지명 또한 신숭겸과 관련된 이름이다. 신숭겸은 고려 태조 왕건(877~943)을 구하기 위해 왕의 갑옷으로 바꿔 입고 적군의 눈을 속인다. 신숭겸의 ‘지혜로운 묘책’이란 뜻으로 지묘동(智妙洞)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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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 동행한 이영숙 해설사가 1천여 년 전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공산(팔공산의 옛 이름) 일대에서 벌인 동수전투 뒤에 생겨난 지명의 유래를 들려준다. 불로동(不老洞)은 왕건이 이 마을을 지나는데 ‘노인은 없고 아이들만 있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불로동은 불로동 고분으로 유명하다. 연경동(硏經洞)이라는 이름은 왕건이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을 지나는데 ‘선비들이 말굽 소리도 듣지 못하고 책을 읽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왕산(王山·191미터) 아래 지묘동(신숭겸길 17)에 자리한다. 왕산은 ‘왕건이 도망을 가서 목숨을 구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팔공산 왕건길 1구간 ‘용호상박길’이 927년 후 삼국 격전장에서 시작한다. 신숭겸은 고려 개국 공신이다. 918년 후고구려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신숭겸은 후백제 견훤의 장수들에게 이곳에서 죽음을 당한다. 유적지에는 신숭겸의 외후손 유영순(1607)이 세운 충렬비와 표충사 표충단, 매판단이 있다. 매판단은 표충사가 헐렸을 때 떼어 낸 현판을 묻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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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신숭겸이 전사한 자리에 세웠다는 표충단을 찾는다. 당시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겠지만 지금은 400살 먹은 늙은 배롱나무가 나른하게 서 있다. 11월의 배롱나무는 잎 하나 남기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7월의 찬란했던 붉은 꽃을 추억한다.

늦가을 추위가 표충단에서 잦아든다. 유적지 동문을 벗어나 벽을 따라 걷는다. 길은 북쪽으로 이어진다. 왕건이 견훤에게 패했을 때에 이 길로 후퇴했을 것이다. 전쟁은 11월이었다. 당시에도 언덕 위 굴참나무 잎은 햇볕을 받아 노랗게 빛났을 것이다. 이 길을 걷는 고려군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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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표충단에는 400살 배롱나무

고려군의 탐방센터까지 시멘트 포장길이 하얗다. 탐방센터 앞부터 내동까지 3.62킬로미터 임도다. 약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1구간 종점에 닿을 수 있다. 1구간은 왕건길 중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다. 왕건길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공산동, 도평동, 안심 2·3·4동 일원으로 총 35킬로미터에 달한다. 코스는 8구간으로 구간마다 왕건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름이 붙어 있다.

산길이 길 전체의 80퍼센트인 28킬로미터를 차지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중 이상이다. 자주 걷는 분들에게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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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팔공산 왕건길 외에 ‘대구 올레’라는 표지가 눈에 띈다. 팔공산에는 걷기 좋은 길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둘레길은 ‘대구올레 팔공산’과 ‘팔공산 왕건길’이다. 팔공산 왕건길 1구간 일부가 대구올레 2코스 한실골 가는 길과 겹친다. 그래서 안내판이 사이 좋게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영숙 해설사에게 두 길의 차이점을 묻는다. “가장 큰 차이점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성이에요. 대구 올레는 모든 코스에서 버스를 탈 수 있어요. 시작점과 종점, 그리고 코스 중간중간에도 버스정류장이 있기 때문에 편해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한 코스를 다 완주하지 않고도 중간에 버스를 탈 수 있어요. 반면에 팔공산 왕건길은 완주를 해도 버스가 없어요. 특히 1구간은 산길 중간에서 끝나요. 당연히 버스가 없죠. 그래서 미리 어떻게 내려갈 것인지 연구를 해야 해요. 팔공산 왕건길은 자연에 가까이 있는 길이기 때문에 그만큼 불편한 점도 있어요.” 해설사가 다른 점을 들려준다. 대구 올레는 대부분 평지를 걷는다면 팔공산 왕건길은 산 능선을 따라 걷는다. 열재·물넘재·깔딱재·옻골재 등 재도 많고 해발 500미터 넘는 거저산, 초례봉도 오른다. 길은 험하지 않으나 능선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 때문에 초보 도보객에게는 지루하고 힘들다. 대신에 왕건길은 무척 호젓하다.

탐방센터를 지나면 너른 임도다. 경사도 없어서 천천히 이야기하며 걷기에 좋다. 인공 저수지 대곡지, 작은 텃밭 등을 지나면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이다. 여기서부터 만디체육시설까지 오르막이다. 길 오른쪽 산에는 소나무가 빽빽하다. 가을바람에 솔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솔향에 취해 걷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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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주름치마 펼쳐놓은 듯 이어진 연봉들

만디체육시설부터는 시야가 시원하다. 멀리 산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레이더 기지가 있는 봉이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1,192.8미터)이다. 비로봉을 중앙에 두고 왼쪽에는 삼성봉(서봉·1,153미터), 오른쪽에는 미타봉(동봉·1,167미터)이 서쪽으로 흘러간다. 여기서부터는 팔공산 주능선과 삼봉을 친구 삼아 걷는다. 안내판이 내동으로 지시한다. 다시 너른 광장이 한 번 더 나오는데, 이곳이 전망대다. 턱받침용 나무에 턱을 괴고 숫자가 적힌 스크린을 보며 팔공산 연봉을 맞춘다. 초례봉, 낙타봉, 무학산, 명마산 등 20개가 적혀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팔공산은 마치 여인의 주름치마를 확 펼쳐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치마의 구김 같은 봉우리에 삿갓봉, 거적산, 은혜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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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지나 시멘트 포장길 모퉁이를 돌면 조붓한 산길이다. 이곳부터는 사람들 발길이 뜸한지 길 위에 낙엽이 수북하다.

8길섶에는 무릎까지 오른 풀들이 겨울 햇살에 바싹 말라 서걱거린다. 수풀을 지나면 열재다. 10명 이상이 모여 고개를 넘어야 할만큼 열재는 산세가 험했다고 한다. 지금은 인근에서 공사를 하므로 험해 보이지 않는다. 1구간은 열재에서 끝난다. 산속에 뚝 떨어진 느낌이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든가 아니면 2구간을 좀 더 걸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2구간 ‘열린하늘길’을 마저 걷기 위해 거저산(511미터) 능선을 타는 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표지선을 따라 나무 계단으로 오른다. 비목 잎이 노랗게 익었다. 굴참나무 밑에는 굴참 열매가 벌써 땅속에 뿌리를 내렸다. 굴참나무 숲길을 빠져나가자 작은 하늘다리다. 하늘다리를 지나 능선을 따라 걸으면 시멘트 깔린 임도를 만난다. 건너편에 등산로 방향표시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있는 곳부터 거저산 정상까지의 30여 분이 가장 힘든 오르막이다. 그 뒤로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된다. 외길 등산로로 2구간 종점 용수동 부남교까지 헷갈리지 않고 쭉 걸을 수 있다. 능선에 부는 골바람이 사납다. 굴참나무가 부딪쳐 딱딱 죽비소리를 낸다. 이 길은 여럿이 걸어야 하고, 도시락을 꼭 챙겨야 한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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