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50대 중반의 주부 최 씨는 과거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던 이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노인성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어머니가 하루가 다르게 어린아이로 변해 가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최 씨 어머니의 치매는 대략 5년 전쯤 발견됐다. 당시 80대 초반이었던 어머니는 치매 초기에만 해도 판단력이나 기억력이 보통 성인보다 조금 떨어진 정도였다. 하지만 80대 중반에 이른 지금은 전반적인 두뇌능력이 2~3세 수준에 불과하다.
“치매 초기에는 판단력이나 어휘능력이 그래도 열서너 살 수준은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해가 다르게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거예요. 한두 달 지나면 한 살씩 어려진다고 할까요.”
최 씨는 얼마 전부터 친정어머니가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것도 ‘늙으면 애가 되는’ 현상의 하나로 해석한다. 노인성 치매가 아니더라도 늙으면 인지능력이나 신체활동력 등이 시나브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아이들처럼 변해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두뇌능력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겉보기에는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들이나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특히 두뇌능력의 핵심이랄 수 있는 기억력의 변화를 보면 그 방향만 다를 뿐 서로 닮은꼴이다. 사람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대략 초등학교 3~4학년의 연령대는 누구나 일종의 기억상실증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 혹은 기억력이 크게 쇠퇴한 노인들과 직접 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마치 노령층처럼 8~9세 연령대는 많은 기억이 두뇌 속에서 사라지는 시기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초등학교 3~4학년들에게 어릴 때 기억을 물어보라. 보통 3세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학생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이는 이른바 유년기 기억상실증의 결과이다.
유년기 기억상실증은 너나없이 경험하는 현상이다. 사실상 예외가 없다. 어떻게 해서 유년기 기억상실증이 생길까.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역시 인간 유아의 기억력은 상당하다.
한 예로 돌을 전후한 어린아이들만 해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이를 아주 길게는 수개월 동안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젖먹이들의 기억은 길어봤자 수개월 동안만 지속될 뿐이다. 넉넉하게 잡아도 4세 이전까지의 기억들은 8~9세가 되면 결국 거의 다 사라져버린다. 흥미로운 점은 5~6세쯤의 아이들은 8~9세에 비해 압도적으로 4세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은 대략 만 7세를 기점으로 해 그 이후에는 남아 있기 어렵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은 왜 청소년기 혹은 성인이 될 때까지 간직되지 않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동물 실험에 따르면 뇌세포 및 시신경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정도는 확실히 밝혀져 있다.
어린 나이, 대표적인 예로 두 돌 이전의 기억은 중앙통제장치가 없는 기억들일 확률이 높다. 어른들은 뇌의 해마라는 부위에서 각종 기억을 연계하는데, 갓난아이부터 대략 만 2세까지 아이들의 해마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기억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시간문제일 뿐 이전의 기억들을 잃게 된다.
뇌세포와 신경의 발달이 역설적으로 기억의 장기 저장을 방해하는 셈이다. 동물의 어린 새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이런 점은 확인됐다. 새로운 신경의 발달을 억제했더니 오히려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기억상실은 겉으로는 노인들의 치매와 유사한 듯하지만 반대작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어린아이들은 신경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잊어버리지만, 노인들은 뇌세포와 신경이 쇠퇴하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어린 나이에 한번쯤 ‘치매’ 유사증상을 체험하는 셈이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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