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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이야기] 조선왕조의 자존심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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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 9월 조선의 정궁(正宮) 경복궁이 건립되었다.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인물 정도전은 궁궐의 주인인 왕이 먼저 모범이 되어 검소와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신념에서인지 전각의 전체 규모도 755칸으로 정했다. 경복궁의 처음 모습은 결코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도전의 가장 큰 정치적 라이벌이자 1398년 정도전을 살해한 이방원은 1400년 조선의 3대 왕 태종으로 즉위하였다. 태종은 두번 째 왕 정종이 수도로 정한 개경이 새 수도로 부적합하다고 여겨 다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한양의 경복궁으로 돌아온 태종은 정도전이 조성한 경복궁만으로는 왕실의 궁궐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새 궁궐의 조성을 지시하여 1405년(태종 5년) 완성을 보았다. 이 궁궐이 바로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법궁이자 정궁인 경복궁의 기능을 보좌해 주는 이궁(離宮)이 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조선의 ‘제2정부청사’로 출발한 것이다. 창덕궁의 중심 전각은 인정전(仁政殿)이다. 김정희는 자신의 문집인 <완당집>의 ‘인정전명(仁政殿銘)’에서 인정전에 대해 “높다란 저 법전은 창덕의 큰 터전이라… 다스림은 무엇인가, 인(仁)으로써 행정하네”라고 표현하여 인정전에 담긴 ‘어진 정치’의 의미를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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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은 창덕궁이 건립되던 해인 1405년에 지어졌다.

인정전은 조선 전기부터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등 정전으로 주요 기능을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정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인정전은 창덕궁에서 가장 권위 있는 건물로 왕의 즉위식과 신하들의 하례 및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이 치러졌다.

인정문에서는 왕의 즉위식이 자주 거행되었다. 흔히 왕의 즉위식은 성대하게 치러졌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느 시대든 왕의 즉위식은 매우 슬픈 분위기에서 행해진다. 전대의 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즉위할 왕은 상복을 입고 통곡하던 와중에 잠시 면복으로 갈아입고 즉위식을 한 후 다시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르게 된다. 이때 왕의 즉위식은 보통 문에서 이뤄졌다. 인정문에서는 연산군·효종·현종·숙종·영조·순조·철종·고종 등 총 8명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왕의 즉위식뿐만 아니라 인정전에서는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과 백관의 하례가 진행되기도 했다. 인정전에서 왕비의 책봉 하례를 받은 인물로는 성종의 왕비인 공혜왕후와 폐비 윤씨·정현왕후,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 효종의 왕비인 인선왕후,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 경종의 왕비인 선의왕후 등이 있었다. 인현왕후는 퇴출되었다가 다시 왕비의 지위로 회복되었을 때에도 역시 인정전에서 하례를 받는 인연을 가졌다.

인정전은 1506년의 중종반정이나 1623년의 인조반정과 관련된 공간이기도 하다. 연산군은 인정전까지 쳐들어온 반정군의 공격을 받았으며, 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의 주도 세력들은 창의문(彰義門 : 서울의 북소문)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 곧바로 창덕궁 인정전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년) 여름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토평하고 돌아와 백관의 하례를 받은 곳도 인정전이었다.

1907년 순종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즉위하면서 인정전의 문틀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인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근대 문물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1908년 무렵에는 인정전이 서양식으로 개조되어 전등이 걸리고 서양식 커튼과 유리창이 생겼다. 일제시대에는 박석이 걷어지고 잔디가 깔리는 등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겪기도 했다. 창덕궁을 대표하는 전각 인정전은 조선시대 왕의 즉위식과 왕비의 책봉 하례가 일상적으로 벌어진 공간이자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처럼 역사의 물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된 후에는 조선왕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으나 근대 수난의 역사를 맞이한 시기에는 그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기도 했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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