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어둠의 벽’ 앞 고통이 창의성 낳는다

똑같은 씨앗에서 난 풀들이라도 그 생태 조건에 따라 달리 자란다. 나무들 역시 그렇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경우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하더라도 그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음식이 된다. 가령 두부를 가지고 1년 365일 다른 요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어떤 중국 음식점 주방장의 장담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에서 비롯된 많은 결과물(many in one)의 사례는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창작자 역시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험 세계나 일어날 수 있는 가능 세계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곧 작가다.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는 우선 상상의 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의 이야기에서 그 상상의 눈은 이렇게 작동된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새들, 물과 돌’을 보던 눈이 ‘생각과 꿈, 환상과 번쩍거리는 섬광’을 보고, 또 ‘죽음처럼 무서운 침묵의 밤’을 응시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어둠의 벽’을 뚫을 수 없다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 절망과 응시의 반복으로 상상의 눈은 더욱 빛나고 깊어진다. 작가만 그런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카잔차키스처럼 ‘어둠의 벽’ 앞에서 무척 고민하고 곤혹스러워한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경험은 확실히 20세기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다. 새로운 가능 세계의 스펙트럼은 더욱 확장되고 또 복잡하다.
여러 이유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골몰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이든, 학자이든, 기업가이든,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농어민이든 할 것 없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삶을 열어 나가는 일에 대해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창의적으로 일을 하라는 주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개의 경우 보통 사람들은 ‘나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소수의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치부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모차르트, 뉴턴, 괴테, 다윈, 피카소……. 이렇게 나열하면 누구라도 창의적인 천재들의 목록이라고 짐작한다. 그들은 어떻게 창의성을 획득하고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하늘에서 벼락처럼 축복의 창의성이 떨어졌을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갑자기 천재가 되어 있었을까? 물론 타고난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것 보다는 자라면서 남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애쓰고 노력한 흔적이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또 누구보다도 오래 ‘어둠의 벽’ 앞에서 그것을 응시하고 고통스러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가령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열네 살 때 그린 <맨발의 소녀>로 조숙한 재능을 인정받은 피카소였지만, 그는 결코 만족하여 멈추거나 반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싫어한 것은 반복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이전에 한 작업과 비슷하게 되풀이하는 것이었고, 또 사람들의 기대지평에 맞추어 그리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늘 조금 다르게 형태와 색과 스타일을 변형시켜 미술의 지도를 바꾸기를 소망했다. 조금 다르게 그리기 위하여 그가 얼마나 고투했는가는 여러 작품에서 확인된다. 그는 이전의 명작들을 투시하고 해체하면서 자기 식으로 변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자기 그림으로 변주하기 위해 58작품이나 다시 그렸고,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 대한 변주는 140여 점에 달했다.
그때마다 피카소는 ‘어둠의 벽’ 앞에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의 벽’ 앞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애쓴 결과물들은 창의성의 역사에서 길이 빛나게 되었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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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