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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한강의 기적’ 낳은 한강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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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은 ‘건설의 날’이다. 건설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건설산업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1980년에 제정한 기념일이다. 정부는 공로가 있는 건설인들에게 정부 포상을 실시하고,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주관할 것이다.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국토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환경보호와 개발논리 사이에서 숱한 갈등이 있었지만 건설산업은 그동안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난개발이나 환경파괴와 같은 부작용이나 역기능도 물론 있었지만.

우리 최근세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건설사업의 하나는 아마도 여의도 개발사업일 터. 여의도(汝矣島)의 한자 뜻을 풀이하면 ‘너의 섬’이다. 버려진 모래섬으로 사람이 살기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너나 가져라’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런 여의도가 40여 년이 지나 우리나라의 금융·정치 중심으로 발돋움했으니, 모름지기 상전벽해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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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광고 ‘한강 건설’ 편(경향신문 1968년 3월 30일)을 보자. “한강건설 사업계획”이라는 헤드라인에 이어 “(한강 개발에 즈음하여) 시민에게 드리는 인사 말씀”이라는 서브 헤드라인이 붙어 있다. 광고 헤드라인에 사업계획이라니? 본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새 시대가 준 새로운 사명을 위하여 우리는 번영의 입구”에 섰다고 전제하며, 번영으로 나아갈 길은 “조국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숭고한 땀방울에 의하여 보다 광활하게 열릴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한강의 건설은 “서울 시민의 보람이자 또 지상과제”이기 때문에 “노도처럼 범람했던 강물을 정복하여 서울이 커 나가는 젖줄로 만들고 버려진 유역을 건설하여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이룩하려는” 노력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모두가 땀을 흘리자는 것이다.

건설 계획의 목표는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한강을 이용해 도시 및 산업 개발을 촉진하고, 한강을 도시의 중심 생활권으로 들어오게 하며, 한강을 최대한 이용하고 지배한다는 것. “한강을 지배(支配)한다”는 표현이 퍽 낯설지만 한강 개발의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는 근거이리라. 그림으로 제시된 ‘종합도’에서 개발되기 이전의 한강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여의도 이상도시 건설, 한강 양쪽에 강변도시 건설, 강변 서안(西岸) 고속 유료도로 건설, 제1중지도 유원지 건설, 제2중지도 유원지 건설, 서울대교·서울교 및 영등포 입체 교차로 건설, 강변1로에서 9로까지의 도로 건설, 아파트 건설, 여의도 윤중제(輪中堤) 공사와 같은 건설내용이 깨알같이 소개되어 있다.

여의도를 이상(理想) 도시로! 아마도 당시의 서울시 공무원들은 우리나라 도시의 이상향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구에서 80킬로미터 지점에 홍수 때의 안전까지 고려한 여의도는 4년 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되었다.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이제는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까지 들어서 우리나라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IFC 지하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쇼핑몰이 꽉 들어차 있어 마치 외국의 어떤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1968년 광고의 마무리 카피에서 한강 건설을 가리켜 “한강변에 이룩될 위대한 민족의 힘의 결정(結晶)”이라고 했는데, 40여 년 만에 그 기대와 바람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그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한강은 유유히 흐른다.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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