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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인생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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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땅은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운가요? 사람들은 왜 그 이야기를 더 해 주지 않는 걸까요?”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 제르트뤼드는 자신을 돌보는 목사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목사는 그에게 위로하듯 대답한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새들의 노래를 잘 듣지 못한단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인도를 받으며 자연에 나가 보통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전원의 교향악, 대지의 교향곡을 즐겨 듣는다. 그리고 환희와 희열에 젖어든다. 그의 영혼에 은총의 빛이 스민다.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앙드레 지드가 1919년에 발표한 소설 <전원교향악>은 이런 소녀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리에의 사랑과 심리학적인 날카로움을 통해 인간성의 모든 문제를 보여준 작가”라는 수상 이유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사람살이와 관련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그가 목사의 도움으로 말하게 되고 세상과 인생을 인지하게 된다. 은총을 알게 되고 마침내 인간적인 사랑도 알게 된다. 사랑 때문에 마침내 죄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을 택하고 만다. 수술로 육체의 눈을 뜨게 되었지만 사랑 때문에 영혼의 눈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확실히 <전원교향악>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감미로우면서도 삶의 장중한 무게가 실려 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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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안수술(開眼手術)을 받은 제르트뤼드는 보지 못했던 시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감동하지만, 수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마침내 “너희가 만일 눈이 멀었더라면 죄가 없으련만”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눈이 멀었을 때 제르트뤼드는 죄를 몰랐다. 영혼의 희열 속에서 사랑의 충만감을 만끽했다. 그런데 “계속 눈이 멀었더라면” 하고 역설적으로 소망할 정도로 이제 눈뜬 그녀는 사랑의 상실감과 죄의식에 시달린다. 폐안(閉眼) 시절 목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개안(開眼) 이후 그 대상이 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 자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죽어서 목사 곁을 떠나고 아들 자크는 개종하는 것으로 목사 곁을 떠난다. 목사는 마음의 황무지를 절감한다.

타인의 행복을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 자신의 행복을 훼손하는 것도 죄악이라고 목사는 눈먼 소녀에게 얘기했다. 지당한 가르침이었지만 그 둘을 동시에 지키는 것은 때때로 쉽지 않다. 가령 목사의 입장에서 제르트뤼드와의 사랑이 아내 아멜리의 행복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죄악이 되고 타자의 윤리학에 어긋난다. 제르트뤼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크가 가톨릭 성직자의 길로 나서 결혼할 수 없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를 사랑하는 것은 곧 목사의 행복을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하여 결국 제르트뤼드는 자기의 행복을 손상시키는 쪽을 선택하지만, 그렇다고 죄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여러 모로 인생의 속절없는 아이러니를 절감케 한다. 타인의 행복과 사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행복과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지혜는 유사 이래 늘 먼 곳에 있어야만 했던 것일까? 진실을 알게 되면 될수록 실망과 고통의 심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는 그토록 아득한 것이었을까? 푸른 전원에서 아이러니컬한 ‘전원교향악’이 아닌 허심탄회한 ‘전원교향악’을 감상할 수 있는 날, 그 언제일까?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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