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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학생회수권’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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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버스 요금으로 1천원짜리 지폐를 절반으로 잘라 한쪽만 내는 얌체승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1천원 권을 반으로 잘라 지폐 끝을 말거나 접어 버스기사의 눈을 속이거나 나머지 반쪽에 종이를 붙여 손으로 가린 다음 슬쩍 요금통에 넣는다는 것. 얌체 승객은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행위가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시내버스 교통카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반쪽 지폐의 사용은 명백한 범법행위다. 어떤 케이블TV에서 방영한 드라마에 1980~90년대 학생들이 버스 회수권을 조금씩 늘린 다음 잘라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학생들이 그 장면을 모방하는 듯하다. 맞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여객자동차운송사업조합이라는 정말 긴 이름의 단체에서 낸 광고 ‘학생회수권’ 편(동아일보 1970년 12월 10일)을 보자. “학생회수권 제도 실시에 대하여”라는 헤드라인 아래 “시내버스를 이용하시는 학생 여러분 및 학부형 제위께” 드리는 말씀을 깨알같이 설명하고 있다. 학생회수권은 각 학교 서무과에서 판매 취급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권당 25장이었던 것을 권당 10장으로 개정해서 판매한다는 내용. 회수권의 사용 기간은 2개월인데 유효기간 전에 사용 잔량을 현금이나 신권으로 교환해 주며, 학교 당국에서 요구하는 대로 제한 없이 판매한다는 것. 또한 그동안 현금 판매만 해 왔으나 학생들에게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학교장의 요청에 따라 위탁판매제도를 병행 실시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공고 형식이지만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추억이 서려 있다. 왜 승차권이 아닌 회수권(回數券)이었을까. 회수권은 버스회사 사장들이 기사들을 의심해 만들었는데, 손님의 승차라는 개념보다 요금을 거둬들인다는 의미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회수권 제도는 실효성문제로 인해 실시와 취소를 몇 번씩 반복한 끝에 오늘의 버스카드에 이르고 있다. 학교 서무과나 구내매점에서 회수권을 구비하지 않아 학생불편이 크다는 지적도 많았다. 1999년에는 토큰 제도가 폐지되고 지불수단이 교통카드와 현금으로 단순화되었다.

그때는 그랬다. 10장짜리 회수권을 정교하게 잘라 11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 그림에 소질 있던 녀석은 사인펜으로 진짜 회수권과 거의 똑같은 회수권을 만들어 사용하다 버스 차장에게 걸려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다. 김진의 만화 <모카커피 마시기>에는 중학생이 된 소년이 자랑스럽게 회수권을 꺼내며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라고 우쭐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회수권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미성년자의 기대 목록이기도 했으니까. 술자리에서 자랑삼아 자주 꺼내 쓰는 무용담들이다.

어디까지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학생들이 ‘버카충’(버스카드 충전)이라는 약어를 자주 쓰면서도, 버스카드를 충전하지 않고 1천원짜리 지폐를 절반으로 잘라 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행 형법상 지폐를 고의로 찢어 반쪽 지폐로 만들거나 이를 불법 운임으로 사용하면, 사기나 통화위조죄로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지난 시절의 좋은 추억도 많다. 좋은 추억이 담긴 장면을 모방하기에도 학창 시절은 너무 짧다.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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