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사냥터에서 막 돌아온 사냥개가 정원에서 뭔가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새 한 마리가 놀고 있다. 아마도 거센 바람에 나무가 꺾일 때 떨어졌을 터이다. 개가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며 서서히 새에게 접근한다. 순간 어디선가 어미 새가 날아와 개 앞을 가로막는다. 날카로운 개의 이빨로부터 새끼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어미 새는 개의 주둥이를 부리로 쪼기도 하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당해 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공포 앞에 떨며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면서 새끼를 지키려 하던 어미 새는 얼마 못 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결국 기절하고 만다. 그런 어미 새의 고귀한 희생에 개도 감동한 것일까. 새끼 새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용감한 새>에 나오는 삽화다. 어미 새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개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으리라. 그럼에도 어미로서 새끼가 처한 위험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게 어미다. 어머니라서 제 목숨을 아낌없이 내놓은 것이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무한 사랑은 모든 것을 던지게 한다. 이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저작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은 공포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사랑으로만 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 있고, 또 향상시킬 수 있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산소에 갔다가 뭔가 수상쩍은 흔적을 발견했다.
주변에 멧돼지 자국처럼 보이는 흔적들 앞에서 아연실색했다. 다행히 봉분 쪽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불안하고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생전에도 어머니를 편히 모시지 못했는데, 멧돼지가 나타났었다면 어머니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까 싶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시골에 계시던 어머니가 상경하셨다. 입원치료를 요하는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서다. 강변터미널(현 동서울종합터미널)로 어머니를 모시러 나갔다. 어머니의 짐 보따리를 받아 앞에서 길을 잡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내가 먼저 오르고 힘겨운 걸음을 걷던 어머니는 몇 사람 사이를 두고 뒤따르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에스컬레이터에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인지, 시골에서 상경하느라 피곤하셨던 탓인지, 갑자기 뒤뚱거리다가 그만 넘어지시는 게 아닌가. 어, 어, 어……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마음은 얼른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타고 내려가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켜드려야지 하면서도 정작 몸은 멈춰버린 상태였다. 속절없이 어, 어, 어…… 하고 있는데, 다행히 어머니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셨다.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어머니는 결코 그러시지 않았을 터이다. 아이인 내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졌다면 어머니는 한걸음으로 내달려 나를 구해 주셨을 게 분명했다. 혹 당신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투르게네프의 용감한 어미 새처럼 당신의 자식을 구하셨을 게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그날 나의 참담한 불효는 나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엄마,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라는 사과의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어머니의 위기 상황을 어정쩡하게 방치한 자식의 처신에 대해 내색조차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그 무한 사랑으로 인해 나는 스스로에게 더 벌을 받아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디 그때 뿐이었으랴.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곰곰이 헤아려보니 그 잘못이 태산을 덮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어머니, 꼭 지켜드릴게요.
안전하게 쉬실 수 있도록….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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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