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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뚝섬’ 경마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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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경마에 대한 관심도 늘고 경마장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소설가 하일지는 1990년에 <경마장 가는 길>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에서 생긴 일> 같은 경마장 시리즈 소설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이 소설들에서 현대인의 표류하는 욕망과 방황하는 쾌락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에 반드시 경마장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경마장을 소설적 상상의 공간으로 활용했기에 독자로서는 뚝섬이나 과천 경마장을 떠올리며 소설책을 잡았다가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떠올리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으리라. 지난 시절의 경마장 풍경은 어떠했을까.

한국마사회의 서울경마장 광고 ‘현대인의 경마’ 편(동아일보 1968년 4월 5일)을 보자. 경마 장면을 지면의 오른쪽 하단에 배치하고 “적중의 쾌감!”과 “현대인의 경마”라는 두 개의 공통 헤드라인을 썼다. 경마를 “국민대중의 오락”이라고 하면서 “사라브렛 350두 출주(出走 : 경주에 나감)”를 강조했다. 본문에서는 경주마별로 기록이 있으므로 그 기록을 검토해 경기에서 이길 승마(勝馬)를 예상 적중시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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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권의 액면가는 100원이었고 배당금은 무제한이었다. 서울경마장의 시설을 알리기 위해 “찬란한 시설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강조한 점도 인상적이다.

열기구 타는 곳으로 잘 알려진 터키의 카파도키아. 준마 ‘사라브렛’의 특산지인 그곳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때 ‘아름다운 말’이라는 뜻의 카파도키아로 그 이름을 얻었다. 그런 명마 ‘사라브렛’을 1968년 한국마사회가 직접 350두나 수입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1960년대에는 경마를 즐기라는 광고가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했다. “현대인의 스포티한 오락. 주말의 즐거운 레저”(동아일보 1969년 3월 21일)와 같은 문구의 광고나 “사상 최대의 규모 4개국(한국·일본·미국·호주) 기수 참가. 황금의 레이스!! 대통령배 쟁탈 국제친선 경마대회”(경향신문 1969년 5월 23일) 같은 광고가 대표적이다. 경마 열풍이 불었음을 입증하는 근거다.

하기야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경마(京城競馬)’를 알리는 광고가 있었다(매일신보 1945년 5월 25일). 기수가 말 등에 납작 엎드려 쏜살같이 달리는 장면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했는데, 전쟁 중에도 경마를 했다니 놀랍지 않은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경마는 대중의 이런저런 관심을 끌어모으며 발전해 왔다. 18세기 후반에 스코틀랜드 공학자 제임스 와트는 힘센 복마(卜馬 : 짐마차 끄는 말)로 실험을 해서 ‘마력(horse power)’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제 우리는 75킬로그램의 무게를 1초 동안에 1미터 옮기는 데 들어가는 힘의 양을 마력(馬力·HP)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 <경마장 가는 길>(1991)이나 중국 CCTV의 30부작 드라마 <경마장(競馬場)>(2012)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도대체 경마란 무엇인가? 그 사행성으로 인해 늘 감시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대중들은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오락과 사행의 시소게임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세계적으로 제도권 사행산업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시행하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율권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규제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 격으로 사행성이 심각해질 것이다. 그 ‘어느 정도’의 정도가 과연 얼마쯤인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하다.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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