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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이야기] 치욕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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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2월 15일 청나라 군대의 빠른 진격 속에 조선의 왕 인조는 피난처 남한산성에 고립됐다. 원래 피난하려 했던 강화도로 피난지를 옮길 것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왕의 가마가 새벽에 산성을 출발하여 강화도로 향하려 하였다. 이때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쳐서 산길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말이 발을 디디지 못하였으므로, 임금이 말에서 내려 걸었다. 그러나 끝내 도착할 수 없을 것을 헤아리고는 마침내 성으로 되돌아왔다”고 <인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매서운 겨울 추위와 눈보라, 물자 보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남한산성에서의 고립 47일. 우리 역사에서 최대 비극의 현장이었던 곳, 남한산성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 옛터를 활용, 조선시대인 1626년(인조 4년)에 이서(李曙·1580~1637)가 책임자가 되어 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왕이 공주로 피난을 갔던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고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남한산성의 평균 고도는 해발 480미터.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석축으로 둘러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 8킬로미터이며 성내에는 넓은 분지가 형성되어 유사시 백성과 왕이 함께 대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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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내 최고봉은 일장산성에 있는데 이곳에 올라 적의 동태를 살폈다. 산성의 정상에 서면 성내는 물론이고 인근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및 서울, 인천까지도 조망할 수 있어서 이곳이 천혜의 국방 요새임을 실감하게 한다. 훈련장에 해당하는 연무대에서 군사들을 지휘했고 동·서·남·북의 4장대가 장수의 지휘본부였다. 4곳의 장대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서장대다. 원래 단층이던 서장대는 영조대에 개축하면서 2층이 되었다. 영조는 왕명으로 2층 누각을 짓게 하고 바깥쪽 편액을 수어장대(守禦將臺), 안쪽 편액을 무망루(無忘樓)라 하였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효종의 원한에 찬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머물렀던 임시 궁궐인 행궁이 있다. 1637년 1월 30일 청나라 군대의 위협과 강추위, 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인조는 청나라가 요구한 항복 조건을 수락하고 남한산성을 내려왔다. 왕이 입는 곤룡포가 아닌 남색의 융복 차림으로, 문도 정문인 남문이 아니라 서문을 통해 내려오는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청나라 태종이 거만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수항단(受降檀 : 항복의식을 받아들이는 단)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행하였다.

병자호란의 상처가 끝난 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의 조선국왕은 여주나 이천 지역의 능행길에 오르면 꼭 남한산성의 행궁을 찾았다. 이곳에 머무르면서 병자호란의 아픔을 다시금 기억하고 반성했다. 다른 산성들과 달리 남한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左殿)과 사직에 해당하는 우실(右室)을 설치했다. 이것은 유사시에 남한산성이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음을 의미하는데 현재 우실은 위치만 전해지고 있다. 남한산성 내에 한때 사찰이 무려 10개나 설치되어 있었던 것도 주목된다.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또 수비하는 데 승려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직후이다 보니 백성이나 군사동원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화된 승려들이 대신 동원됐다. 병자호란 때는 승려들이 관군들과 함께 정식으로 편제되어 남한산성에 머물렀다.

남한산성의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暗門)·우물 등의 방어시설 및 관청, 군사훈련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라는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지만, 산성의 구조와 산성 내의 방어시설은 역사문화유산으로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남한산성은 이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낙엽이 아름다운 남한산성을 찾아 늦가을의 정취와 함께 병자호란과 같은 아픈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를 다짐했으면 한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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