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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기후변화, 큰 틀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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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마다 장마철을 어렵게 보내곤 하지만 올해는 매우 심했다. 사람들마다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하늘을 원망해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문제는 해마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인데, 바야흐로 기후변화의 위기에 우리가 처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기상청에서 역사적인 통계 수치를 발표하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원인은 기후변화’로 이해하는 듯하다.

장마철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대개 시간적 배경막 구실에 그쳤다. 대표적으로 1973년 발표된 윤흥길의 <장마>는 한국전쟁 기간 중 장마철을 배경으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의 눈에 비친 분단 상흔의 그림자를 다룬 문제적 소설이다. 국군 소위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외삼촌과 빨치산으로 참여한 친삼촌 사이에서, 그런 자식들을 둔 외할머니와 할머니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이의 시선과 의식이 인상적이다. 가족 구도를 분단 상황의 축도로 구성한 것인데, 그 곤혹스러움을 더하는 것이 장마철의 축축한 분위기다. 장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배경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후 발표된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장마 그 자체가 아예 주인공의 심급으로 격상돼 있다. 20년 전부터 살아온 아파트의 주택담보 대출을 다 갚았을 즈음 재건축을 위한 철거명령이 내려진다. 그때 느닷없이 진짜 집주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던 와중에 아버지는 40미터 높이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해 사망한다. 사건은 실족사로 처리되었지만, 이 사고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썩 많다.

다른 주민들은 모두 이주를 마치고 갈 곳 없는 주인공네만 홀로 남겨졌다. 예정대로 단전, 단수 조치가 취해진다. 그리고 엄청난 큰물이 진다. 길이 끊기고 학교도 갈 수 없다. 아파트 권리를 사기당한 사회경제적 인재(人災)로 고립되었던 주인공네는 설상가상 홍수라는 수재(水災)로 고립이 가중된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94~95쪽) 이런 자연 앞에서 주인공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당뇨를 앓고 있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버린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소년은 문짝으로 간이배를 만들어 어머니 시신을 태우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어머니 시신마저 격류에 빼앗긴 소년은 무시무시한 어둠 속에서 물 위로 솟아있는 타워크레인에 매달리게 된다. 살려달라는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나는 우주의 고아처럼 어둠 속에 홀로 버려져 있었다. 마치 물에 잠긴 마을이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기분이었다.”(117쪽) 어린 주인공은 고립감의 절정에서 아득한 광장공포에 시달리면서 이렇게 흐느낀다. “왜 나를 남겨두신 거냐고. 왜 나만 살려두신 거냐고. 이건 방주가 아니라 형틀이라고. 제발 멈추시라고….”(118쪽) 어린 소년에게 장마는 절절하게 혹독한 시련이다.

자연 상태를 거스르며 인공적인 개발을 가속화해왔던 지난 시절에 대한 반성과 그 결과의 일환으로 생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많은 생각거리를 얻는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이 강조된 것도 꽤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그것이 제대로 관철되기는 어렵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겠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곤란과 피해 양상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의 형틀을 자연의 방주로 변환할 각계의 실천적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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