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마왕은 이렇게 절규했다. 신해철의 노래 <껍질의 파괴>는 시대를 거스르는 산문정신의 한 극점을 보여준 사례였다. “부모가 정해 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이렇게 노래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시대의 문제성을 이토록 일목요연하게 추문화할 수 있을까.
내가 없는 나의 삶을, 각본대로 뻔하게 살아가는 삶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다른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삶을, 그는 철저하게 회의했다. “끝없이 줄지어 걷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 / 나도 일부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그는 껍질을 파괴하면서 자기를 찾아 나서고자 했던 것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 이제는 묻는다, 왜 /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 Fight! Be Free! Revolution of the mind! / 껍질 속에 나를 숨기고”(<껍질의 파괴>).

언제나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재즈카페>)를 생각하며 긴장했던 그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그대에게>) 포기할 수 없는 ‘그대’를 향한 간절한 꿈을 견지했던 음악인이었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해에게서 소년에게>)라고 노래했던 그는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 꿈은 우리 곁을 떠나네”(<영원히>). 남들과 닮아지고 길들여져 자기를 잃고 꿈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혹은 “자잘한 욕심들”로 인해 “마음의 안식”을 구하지 못하고 존재의 무거움에 시달리는 “의미도 없는” 삶으로부터 탈피해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민물장어의 꿈>)서는, 늘 자기 삶에 예리한 질문을 던지며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재즈카페>).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뿐”(
마왕 신해철. 그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자존감의 노래를 당당하게 바친 가수였다. 언제나 익숙해져 가는 것을 거부하고, 늘 새로운 자기탐문의 세계를 추구했던 그였다.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불멸에 관하여>)라고 노래했던 그는 서둘러 텅 빈 충만의 세계로 건너갔다. 그의 노래와 삶은 “처음부터 텅 빈 채로 완성돼 있었”(<불멸에 관하여>)는지도 모른다. 삼가 명복을 빈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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