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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내년 나라살림과 새 경제 패러다임

정부는 2018년도 예산안과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재정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앞세워, 한국 경제가 당면한 여러 가지 위기, 특히 저성장,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저출산 등 그동안 반드시 해결했어야 할 문제들에 대해 ‘선의의 중재자’로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왔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위기는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1995년 무렵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세계화 과정에 돌입했고, 저성장이 고착화됐다. 김영삼정부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에 1% 이상씩 성장률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지금은 2%대 성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마저 생겨났다. 문제는 이러한 저성장의 부정적 영향이 경제적 약자에게 편중돼 나타났다는 점이다. 임금을 중심으로 한 가계소득의 경우 상위 10%가 총소득의 45%에 달하는 부분을 점하게 됐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가계부채의 급증과 동시에 진행됐고, 이 현상의 이면에는 노동시장의 양극화 상황을 고착시킴으로써 더 이상 저성장과 양극화의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때에 정부가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에 초점을 맞춘 예산안과 중장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계획한 것은 필연적인 선택으로 판단된다. 문재인정부는 경제운용의 원리로서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국정전략을 세웠다. 이는 경제의 중심을 국가와 기업에서 국민 개인과 가계로 바꾸고,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성장’을 목표로 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첫째로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자영업자의 영업력 확충을 위한 조치, 아동수당 신설, 통신료나 카드수수료와 같은 생활비 인하 등 국민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증가시키면 경제 전체의 총수요가 증가해 생산이 늘고 다시 고용이 증가하는 ‘경제의 선순환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는 ‘소득주도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둘째로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이를 청년 추가고용 등 민간으로 확산시키며, 한국형 유연 안정 모형을 정립하려는 ‘일자리 경제’가 있다. 셋째로는 기업의 공정한 경쟁기반을 확충해, 대기업은 세계에서,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공정하게 성장하고, 소상공인은 창의력을 발휘해 기업의 성장기반을 갖추려는 ‘공정성장’이 있다. 끝으로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혁신의 생태계를 조성하며 신산업 창출을 위한 재정 투자와 규제 재설계의 ‘혁신성장’이 있다. 소위 ‘네 바퀴 성장’이라는 정책에 조응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의료·복지·노동·교육·국방 등에서 재정의 국가 책임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려는 적극적 방향 전환이 느껴진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러한 노력을 두고 “5년 동안 곳간을 다 퍼내겠다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재정은 일반 가계와는 다르다. 가계는 반드시 번 돈의 범위에서 써야 하지만, 국가재정은 용처에 맞추어 쓸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인 것이다. 다행히 현재 재정 여력은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때 정부가 국민 모두의 복지와 소득을 위한 재정을 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정부의 발표대로 5년간 국정과제 178조 원의 소요재원 중 세입 확충으로만 82조 원을 조달할 계획이어서 조달 자체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을 두고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 경제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은 1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보다 크게 낮다. 우리에겐 당면한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해야 할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야 할 기반이 필요하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약간의 세율 인상과 구간 조정으로 잠정적인 인상에 그치고 있으나,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 자주국방을 염두에 두는 나라가 되려면 국가의 재정적 책무는 지금부터라고 할 것이다.

 
이한주 |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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