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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밥지옥. 처음 이 단어를 들은 것은 장모님을 통해서다. 예컨대 심심한 된장국에 손수 재배한 푸성귀로 만든 갖가지 나물, 한약재를 넣고 보들보들하게 삶아낸 수육 등이 올라온 상차림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장인어른이 먼저 운을 떼시는 거다.

“나는 말이지, 집에서 이렇게 평범하게 먹는 게 제일 좋아.”

이게 평범하다고? 처음 듣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들을 때마다 기가 막힌다. 뭔가 말을 하고 싶지만 옆에 앉은 아내를 보며 꾹 참을 뿐이다. 그냥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장인어른, 저는 생일날에도 이런 밥상 못 받습니다요.’ 이 타이밍에서 ‘장군 멍군’ 식으로 응수하는 것은 장모님이다. 쌈 채소를 가득 담은 접시를 식탁 한복판에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한마디 하신다.

“어이구, 이러니 내가 평생 밥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있나?”

이 밥상머리 대화는 기원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유서 깊다. 숫제 제의적이다. 마치 가톨릭 미사에서 신부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입을 열면, 신자들이 한목소리로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화답하는 것과도 같다. 물론 전자가 연대의 확인이라면, 후자는 분열의 전조라는 차이는 있겠다. 장인어른의 열띤 ‘집밥 예찬’에 대한 화답은 장모님의 서릿발 같은 ‘밥지옥 한탄’이니까. 

장모님의 일상적인 푸념쯤으로 여겼던 ‘밥지옥 한탄’이 생각보다 단단한 옹이를 가진 불치병 내지는 난치병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여행 가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꺼내시기에 “어머니가 원래 여행을 좋아하시나 봐” 했더니 아내가 깔깔 웃는 거다. 

“아냐. 엄마는 좋은 여행지도 필요 없어. 여행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딱 하나거든. 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기억을 돌이켜보니, 처가에서 보낸 하루 이틀 새에도 무수히 반복되던, 장모님의 노동요와도 같은 밥지옥 한탄이 귀에 쟁쟁하다. 아침 먹고 돌아서서 치우고 나면 점심 차려야지, 점심 먹고 돌아서서 치우고 나면 저녁 차려야지… 온종일 밥만 차리다가 끝난다니까. 뭐, 운동을 하고 악기를 배우라고? 이렇게 사는데 무슨 시간으로? 이틀에 한 번 배드민턴 치는 것도 정말 간신히 시간 내는 거야. 나가서 사먹자고 해도 싫다지, 어디 다니는 것도 싫어하지… 내 인생은 정말 밥만 차리다가 끝나는 거야….

아내는 밥지옥의 원인을 한식 조리법에서 찾으며 제법 전문가다운 표정을 짓는다.

“서양 사람들 식습관 생각해봐. 아침에 저마다 시리얼에 우유 말아먹고 나가지. 좀 차려준다고 해봤자 달걀프라이하고 베이컨 굽는 게 다야. 급식이라고 나오는 것도 피자 한 조각이나 치킨 너깃 같은 거고. 그래도 애들 키만 잘 크고 발육만 잘 되잖아. 우리보다 체력도 좋고. 그에 비하면 한식은 손이 많이 가도 너무 많이 가지. 나물 하나만 봐도 그렇잖아. 사갖고 오면 하나하나 붙잡고 다듬어야지. 물에 최소한 세 번은 씻어야지. 그걸 또 데쳐야지… 데치기만 해, 양념에 무쳐야지.”

나는 장모님도 우리처럼, 김치 포함 일식삼찬(一食三饌)으로 메뉴 구성을 축소하면 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내가 내 진심을 몰라줄 것만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와 닿지 않을 게 빤한 얘기를 발상의 전환이랍시고 늘어놓았다.

“근데 난 말이야.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정말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인류사를 통틀어서 집에 해먹으려야 해먹을 재료가 없다는 게 고민이었지, 지금처럼 해먹을 건 넘쳐나는데 내가 바빠 죽겠다는 고민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있겠냐고? 그리고 시야를 더 넓혀서 다른 동물들이 사는 걸 봐. 걔네들도 다 밥지옥, 돈지옥이야. 자연계의 순리라는 거지. 오히려 인간이 거기에서 가장 많이 벗어나 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투정을 하는 거야.”

TV 화면에서는 마침 곰 두 마리가 해안가에 떠밀려온 혹등고래 사체를 뜯어먹는 장면이 나왔다. 어마어마하게 큰 고래라서 1년 치 양식이 되고도 남을 법하건만,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으니 녀석들은 굶어죽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나서야만 할 것이다.

“에구, 우리 집 냉장고라도 빌려주고 싶네. 아니면 육포 말리는 법을 가르쳐주든지.”

아내는 킥킥 웃으며 냉장고 쪽을 바라보았다. 음식으로 꽉꽉 들어찬 육중한 냉장고와 냉동고, 김치냉장고를.

 

구승준 |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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