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노란 은행잎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노래가 나온다. 볼륨을 높였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에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문득 궁금해진다. 그 연인은 언제 떠났을까?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런 날 떠났을까, 하얀 겨울에 떠났을까, 아니면 떠나지 않았을까, 못했을까? 연인이 떠난 후에 남은 자는 미움으로 살까, 미련으로 살까, 우울로 살까, 망각으로 살까?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최백호 선생이 박범신 선생과 함께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가 온몸으로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이라는 것을. 작은 몸으로 눈을 감고 노래에 취해 온몸으로 노래하는 그를 보면 거기가 세상의 중심 같다. 그의 노래에는 당연히 내 것인 줄 알았던 것, 내 길인 줄 알았던 것을 잃고 갈 곳 잃은 영혼이 그 방황과 상실을 긍정하는 운명애가 있다.
나는 최백호를 좋아한다. 그는 잘 만들어진 가수가 아니다. 그를 만든 것은 자본도 아니고, 회사도 아니고, 바로 운명 같은 바람, 인연의 바람이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단다. 그런데 그게 어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는 말이겠는가. 서정주의 시에 있는 대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이겠지. 그래 그런지 그의 노래에는 바람의 냄새가 난다. 생이 있고, 생의 낭만이 있고, 낭만의 바람이 있고, 그 바람을 받아들이게 하는 운명애가 있다. 그의 노래에는.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의 끝이다. 무슨 노래가 이렇게 허술하게 끝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허술한 곳에 살면서 잃어버린 것의 향기가 후욱, 올라온다. 비어 있는 곳은 비어 있는 대로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대로 그대로!
그 최백호가 정미조를 37년 만에 무대에 서게 했단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 정미조는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다. 우리는 ‘휘파람을 부세요’를 부르며 청춘의 호기심을, ‘불꽃’을 부르며 열정을, ‘개여울’을 부르며 우리 안의 그리움을 기분 좋게 표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들의 언니 정미조가 고별무대를 끝으로 가수의 길을 접고 다른 길을 간단다. 어떻게 정상에서 한 번 뒤돌아보는 일 없이 떠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정미조의 힘이었다.
정미조 선생은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그녀를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우리들의 언니를, ‘불꽃’의 열정이나 ‘개여울’의 그리움을 간직한 소녀 또는 여인일 거라 추측했었다. 그러나 그 추측은 금방 깨졌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품위가 있었다.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겸손하면서도 분위기에 쓸리지 않고 조용히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적 품위가. 나는 왜 그녀가 인기의 황홀에 도취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그녀를 37년 만에 노래하게 만든 최백호 선생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바로 그 ‘품위’ 얘기를 해서 놀랐다. 정미조 선생은 품위가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품위와 녹슬지 않은 목소리를 믿고 함께 노래하는 최백호 선생을 보면서 왜 내가 최백호를, 최백호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본 것 같았다. 그의 노래와 삶은 둘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적인 품위를 믿고 우정을 알고 운명의 바람을 느끼는 음유시인이다. 아름다운 인연의 힘을 아는 그들이 진정 생을 노래할 수 있는 가수가 아닐는지.
이주향 |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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