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조선 시대 때의 얘기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소설책은 값비싼 혼수품이었다.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 결혼하고 친정에 처음 온 딸이 집에 있던 소설책을 베껴 써가지고 시댁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소설 분량이 너무 길어 미처 절반도 못 끝낸 터라 빈손으로 시댁에 돌아갔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아버지는 딸이 쓰지 못한 부분을 대신 써 필사본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딸의 사촌동생을 불러 쓰게 했다. 이번에는 글씨체가 마땅치 않아 다시 딸의 아래 동생에게 맡겼다. 필사본이 완성돼 갈 무렵 조카아이가 자신도 필적을 남기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마지못해 나머지 한 장을 채우도록 했다. 필사본은 온 가족이 동원돼 완성한 셈이다. 아버지는 책을 딸에게 보내면서 책 여백에 편지를 대신해 한마디 남겼다.
“아비가 그리울 때 보거라.”
친정에서 보낸 책을 받아든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온 가족이 필사한 책을 보던 딸이 아버지의 추신을 보고는 또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는 따뜻함을 떠올리면서 쉽지 않은 시집살이에서 영원히 식지 않는 마음의 손난로를 갖게 됐을 것이다. 이 사료(史料)를 발굴한 정민 한양대 교수는 “필사기가 적힌 마지막 장에는 그녀의 눈물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가부장적이며 남존여비의 사회로만 알았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따뜻한 가족 간의 사랑이 있었다.
시대와 장소를 바꿔 2000년대 초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얘기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조시 해밀턴은 한 경기에서 홈런 4개를 날린 전설적인 타자였다. 그는 거포 타자로서 최고의 자질을 갖춘 선수였다. 그러나 2001년 가족과 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극심한 경기 부진에 시달렸고 이를 탈출하기 위해 기분 전환용 문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약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결국 그도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2004년 2년간 선수 자격 정지를 받은 후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할머니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자신을 죽이고 있고, 더 나아가 너를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고 있어!”
해밀턴은 할머니 말에 큰 충격을 받곤 정신을 차렸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해밀턴은 그를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2008년 강타자 반열에 올랐고, 2009년 타격왕, 2010년 팀을 월드시리즈 진출로 이끌었다.
해밀턴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를 다시 끌어올린 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이었다. 가족은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가족의 사랑은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그것은 따뜻한 관심과 배려다. 상처를 치유하고 위기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랑은 단지 열정적인 감정만이 아닌 관심과 배려를 통해 이뤄진다.
관심과 배려는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소통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사랑은 소통이며 서로를 사랑한다는 느낌은 낭만적인 감정이 아닌 소통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가족은 때론 서로에게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족은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이며 우리의 힘이다.
최광현 | 한세대 심리상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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