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그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자정을 불과 30분 남긴 시각이었다. 목소리에는 취기가 느껴졌고, 중간 중간 격정을 추스르지 못한 흐느낌이 스며들었다.
“선배님 맞잖아요. 같이 수업 들었던 것도 다 생각나고…. 그럼 제 기분이 어떨지도 아실 거 아녜요?”
말하자면 그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예정된 날짜까지 번번이 업무를 완수하지 못해 중간에 끼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회사로서는 기회를 계속해서 줄 수 없으니, 앞으로 한두 번 정도를 끝으로 그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쪽으로 얘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그와 내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임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감춰도 그만인 일을, 그가 굳이 드러내며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자기 인생 최대의 ‘흑역사’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낱낱이 지켜보는 사람이 동창생이라는 게 과연 반가울 수 있는 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날 밤 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아니, 후배한테 꼭 그러셔야 해요? 선배님이잖아요. 선배님 맞잖아요?”
술기운 때문일까,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때문일까. 말은 사방으로 허둥댈 뿐 두서가 없고, 발음은 야무지게 끝맺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암초에 걸린 자기 신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알고 보니 동창생이라는데 그는 몇 곱절의 참담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을 참담하게 만든 바로 그 사실에 일말의 기대감을 걸고 있었다. 이 전화를 하는 그의 심정이 어떤 것일지 대강은 짐작이 됐고 이해도 갔다. 하지만 고통에 찬 그의 호소가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뜻밖에도 냉랭하게 굳어갔다. 그가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요행만 바라는 게 아닌 줄 알면서 왜?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떻게 끝내야 좋을지 몰랐던 통화는 다음에 얘기하자는 말로 마무리됐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내 기분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가 무리를 해서 그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는 것이 정말 옳고 선량한 일인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쓰는 동안 제 역할을 못한다면, 이제 그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그를 도움으로써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다면, 그거야말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잔인하고 부도덕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눈에, 그리고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 눈에 이런 태도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면… 다시 자신이 없어지고 머뭇거려졌다. 나는 역시 차갑고 매정한 사람인 걸까.
예전에 연예가의 소소한 뒷얘기를 다룬 인터넷 뉴스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 있다. 모 개그맨이 인기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오랜 무명 생활에서 벗어나게 됐다. 알고 보니, 특급 대우를 받는 선배 개그맨이 그의 처지를 딱하게 보고 제작진에게 강력히 천거한 덕분이었다. 잘나가는 연예인임에도 주위를 돌아보는 미덕을 잃지 않으니 얼마나 장한가, 기사는 그런 투로 내용을 끝맺고 있었다. 인터넷 댓글들도 찬양 일색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공감 능력이 없는 소시오패스(sociopath)처럼 딴 생각에 빠져들었다.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이토록 단순하고 의심 없이 선한 미담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알음알음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혼자 모르는 사람으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삐딱한 감정이입이 계속됐다. 그 인기 개그맨이 추천한 무명 개그맨이 모든 무명 개그맨들 가운데 가장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그다음으로 기회가 돌아갈 법한 누군가가, 그래서 실력과 재능이라는 번호표를 들고 내내 기다리던 누군가가 이로 말미암아 절망과 좌절에 빠진다면 어떡하지? 왜 이런 행운의 최종적인 완성이 누군가와의 친분에 의한 것이어야 하지?
그날 밤 통화 이후, 그와 나는 아직 다음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것을 행운이라고 부르든 선처라고 부르든, 인생에서 주어지는 기회라는 게 ‘화장실 한 줄 서기’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성인다. 먼저 온 순서대로, 또는 자격에 가장 부합한 순서대로 기회가 주어진다. 얼마나 단순한가. 그러고 보면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친절한 세상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끔찍하게 불친절한 세상인가. 그런 ‘친절의 역설’을 곱씹게 된다.
김은하 | 칼럼니스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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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