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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세계를 바꾸는 건 열정일까요, 냉정일까요? 옥스퍼드대학교 철학과 교수 윌리엄 맥어스킬이 말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선의와 열정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이라고. 그의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에 따르면 분별없는 이타적 열정이 오히려 해악일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돌팔이 의사가 성실하면 사람을 해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세상을 제대로 바꾸는 에너지는 열정이 아니라 냉정이라고 말하는 건 당연합니다.

맥어스킬은 구체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에 취해 자선단체에 기부만 해놓고 정작 우리가 기부한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본 적이 있느냐고. 우리가 행하는 다양한 이타적 행위의 효율을 따져보는 냉정한 판단이 중요하다는 그의 견해는 곱씹을 만합니다. 재밌는 예는 우리가 좋은 일이라며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고, 노동착취를 하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운동하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는 것이 효율 면에서는 떨어진다고 합니다.

선행을 위한 그의 방법론은 정말 똑 부러집니다. “나의 선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이것이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물어야 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착한 일을 할 때도 성과를 따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한편 끌리면서도 또 다른 한편 불편할까요?
 
기부하고 봉사하고 선택하는 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세상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예측하고 체크하는 것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단체를 대충 걸러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떤 단체를 선택해 봉사 또는 기부를 하려 할 때 이미 그 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 나의 지향성과 맞는지를 따져봅니다. 단지 우리는 맥어스킬 교수처럼 많은 정보를 취합해서 효율 면에서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선택할 뿐이지요. 과연 천 개의 바람으로 흩어지고 천 개의 바람으로 모이는 행위의 인과관계를 어찌 다 예측하고 체크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삶의 지향성이나 태도와 관련되어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있는 선행을 말입니다. 아마 그래서 나는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불편한 모양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가난하지만 똑똑한 대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시간을 많이 내 알바를 해서 어렵게 번 돈 중에 매달 5000원을 환경단체에 보냅니다. 효율로 따지자면 알바를 할 시간에 공부해서 빨리 좋은 직업을 얻어 제대로 수입을 얻게 된 후 큰돈을 기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효율’ 좋아하는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당장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작은 돈의 기부를 미루고 열공하겠지요. 그러나 삶이 과연 그런 계산대로 굴러갈까요, 삶이 그런 계산을 허용할까요?

알바를 통해 어렵게 모은 돈의 일부를 떼어 의미 있는 일에 쓰고자 하는 일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한 지향의 씨앗을 심는 행위입니다. 그런 씨앗을 심어본 적이 없이 나중에 선행에 큰돈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일이 아닐까요?

젖이 잘 나오는 젖소가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기분 좋게 신선한 우유를 내주는 젖소를 보면서 주인이 생각합니다. ‘열흘 뒤가 잔칫날이니 열흘 동안 젖을 짜지 말고 그저 젖소를 잘 먹이기만 하자. 그러면 잔칫날 손님들에게 막 짠 신선한 우유를 제대로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열흘이 지나 잔칫날이 왔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주인은 많은 우유를 기대했으나 젖소에게서 우유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짜지 않아 젖소의 젖이 말라버린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당신은 냉정한 이타주의자십니까? 직관적인 이타주의자십니까? 아니면 이타주의라 하는 것이 아예 불편하십니까?

 

이주향 | 수원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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