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십 원짜리 동전이 애물단지인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지갑에 넣고 다니자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써먹을 데는 드물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그래도 돈인데…’ 싶다. 그래서 마트에서든 어디서든 셈을 치를 때 이런 식으로 정리해주면 아주 반갑다.
“혹시 사십 원 있으세요? 그럼 제가 천오백 원 거슬러 드릴게요.”
순간 그까짓 일에 눈에서 불이 번쩍 일어난다. 안 되면 십 원짜리를 만들어내기라도 할 기세로 지갑을 탈탈 턴다. 그럴 때 십 원짜리 동전의 쓰임새란, 때를 만나지 못해 하릴없이 허송세월하던 이무기가 구름을 타고 용이 되어 온 천하에 제 가치를 드러내는 격이다. 미션이 성공하면 묵은 체증이 날아간 듯 가슴이 다 시원해진다.
그 십 원짜리 얘기다. 단골 채소가게에서 값을 치르려는데, 지갑을 보니 십 원짜리가 여덟 개나 보인다. 세상에, 사는 게 다 무겁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것들을 빨리 털어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짧은 망설임 끝에 계산대에 버티고 선 주인아주머니에게 비굴한 미소와 함께 도움을 청했다.
“저기요, 이십 원만 빼주시면 안 될까요?”
거기에는 딱히 친밀감 있는 대화를 서로 나눈 적은 없지만 수년째 단골이라는 소박한 자신감이 한몫했다. 그것도 보통 단골인가.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일주일에도 네댓 번씩 찾는 단골이다. 주인장의 머릿속에서는 내가 인상적인 ‘헤비 쇼퍼’가 아닐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 가게가 ‘집 밖에 있는 우리 집 냉장고’만큼의 위상이 있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무뚝뚝한 주인아주머니 표정은 대번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안 돼요. 우린 그런 거 절대 안 돼요.”
십 원짜리가 애물단지인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런 식의 버르장머리는 초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고객 대응 매뉴얼일까. 어쨌든 그 바람에 애써 눌러놨던 한 생각, 안 그래도 마진이 박할 게 빤한 채소가게에서 이십 원이 됐든 이천 원이 됐든, 값을 깎으려고 하는 건 떳떳치 않다는 생각이 일어나 얼굴이 붉어졌다. 후다닥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왔다.
하지만 까만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집에 오면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감정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서운함이었다. 아무리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일절 가격 흥정이라고는 없던 단골에게 이십 원 가지고 너무한다 싶었다. 이십 원 가지고 이렇게 오래 생각하고 삐치기까지 하는 건 웃기지만, 집에서 제일 가까운 그 가게를 제치고 다음부터는 발걸음이 다른 채소가게를 향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날이 왔다. 그때까지도 기분은 웬만하면 다른 가게를 가고 싶다는 거였지만, 하필이면 너무 바빴다. 하는 수 없이 백기 들고 투항하는 심정으로 문제의 그 채소가게로 갔다. 마음은 한없이 옹졸해져서 ‘그럼 그렇지, 네가 우리 가게에 안 오고 배겨?’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비웃음이 음성 지원이 되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를 발견한 아주머니의 표정이 멈칫했다. 내심 의기양양해 하리라 여겼는데, 로봇 태권브이 같은 무표정의 수면 밑으로 당황스러움과 미안함, 겸연쩍음 등이 불과 몇 초 안에 혼란스럽게 교차됐다. 아니, 무표정이었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 순간만큼은 주인아주머니와 나 사이에 투명한 실로 된 연결고리 같은 게 있는 것만 같았다. 감정의 미세한 진동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이상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이 아줌마가 천 원을 빼고 계산한 것이다. 아니, 이십 원도 못 빼준다면서 천 원은 왜 빼줬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수년째 가게를 들락날락 했건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런 것을 ‘실수 이면에 도사린 무의식적 의도’라고 하는 걸까? 마음이 알쏭달쏭해졌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섭섭함이 아주 가셨다고 할 수는 없지만 풀어지기는 해서 그 채소가게에 또 갔다. 이번에도 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움찔한다. ‘아니, 뻣뻣대마왕 아주머니가 왜 약한 척이시래?’ 싶어 웃음이 났지만, 겉으로는 태연자약 물었다.
“숙주 있나요?”
그 말에 아주머니가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있긴 한데 상태가 별로네. 그래도 육개장에 넣어먹기엔 괜찮아요. 대신 오백 원에 줄게요.”
나는 우리가 수년째 눈을 마주쳤지만, 그날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초자연적인 놀라움에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내가 육개장에 넣어 먹을 숙주를 찾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았대? 우리는 여전히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쯤은 아는 사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면 갈등은 나쁜 게 아니다. 사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십 원의 가치는 결코 허투루 볼 게 아니다.
김은하 |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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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