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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헤어졌다고 말하고 헤어지지 못한 우리

<페이스북 심리학>이란 제목의 책에는 이런 이별 사례 하나가 등장한다. 미국에 사는 샘은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약혼녀 리사가 자신의 ‘가족 및 결혼/ 연애 상태’를 ‘약혼’에서 ‘연애 중’으로 바꾼 걸 발견했다. 당연히,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지만 정작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와 연애 중’이라는 표시 옆에 샘과 가장 친한 친구의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 모임>의 개정판을 낸 후, 독자들에게 유독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헤어지고 싶은데, 정말 잘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지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헤어졌다고 말하고 지금도 헤어지는 중인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론 과거에도 이별은 지독히 힘들었다. 하지만 바뀐 시대에 이별은 과거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성격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다. 

 최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커플을 자주 보았다. 몇 년에 걸쳐 이런 현상을 살펴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리 시대의 이별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주인공 영희는 이렇게 독백한다.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퍼센트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잘되는 사람들은 3퍼센트밖에 안 된대. 나머지 97퍼센트는 다시 헤어진대. 처음에 헤어졌던 이유랑 똑같은 이유로!”

 이제 ‘과거의 사람들’이란 말은 점점 더 시대착오적이 되고 있다. sns는 과거를 과거로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과 바뀐 삶의 조건들은 ‘연애의 시작’ 측면에선 유용하지만, ‘연애의 끝’ 측면에서 보면 정말이지 최악이다.

2013년 강남경찰서에서 ‘이별 범죄를 예방하려면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한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 대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공문을 냈지만, 이별 범죄는 날로 극악스러워지고 있다. 이것 역시 24시간 연결된 sns 문화와 무관치 않다. 과거에는 누군가의 우편함에서 편지를 몰래 꺼내 보는 게 명백한 범죄 행위였지만, 지금 우리는 별 죄책감 없이 누군가의 계정을 몰래 살펴보거나 스토킹한다. 계정 전체를 해킹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헤어짐이 어려워진 이유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연인과 헤어진 걸 모르는 친구가 갑자기 ‘단톡방’ 같은 걸 만들어서 헤어진 두 사람을 초대하는 참사. 어느 날, 헤어진 남자가 ‘알 수도 있는 사람’에 뜨거나, 실수로 그 사람에게 ‘친구 신청’을 누르는 경우. 헤어짐이 단순히 자신의 ‘의지’로만 해결되지 않는 현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진 연인을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 혹은 ‘알 수도 있는 사람’으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다.
 
언제나 어려운 이별이었지만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별. 놀랄 것도 없다. 마크 주커버그 역시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홧김에 페이스북을 만들었으니까.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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