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요즘 동물 다큐멘터리에 빠졌다. 칠흑같이 컴컴한 심해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먹잇감의 위치를 파악하는 돌고래, 서식지를 습격한 말벌을 에워싼 다음 발열을 해서 태워 죽이는 일본 꿀벌 등등 신기해서 입이 딱 벌어지는 동물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요놈이었다. 1분에 1500번 뛰는 미친 심장의 소유자, 첨서.
쥐 서(鼠) 자를 달고 나온 것에서 짐작되듯, 첨서는 우리가 아는 쥐 비스무리하게 생겼다. 길고 뾰족한 주둥이에 털은 짙은 갈색이며, 몸길이는 4㎝에서 8㎝ 사이로 앙증맞다.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이 귀여운 용모와는 상반되게, 녀석을 악랄하고 치명적인 포식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문제는 바로 심장 박동 수에 있다. 1분에 1500번이라는 숫자를 파고들어 가면 1초당 25번 뛴다는 얘기가 되고, 이는 평지를 달리는 자동차 RPM(엔진의 분당 회전수)이라야 그나마 견줄 수 있다. 여기서 첨서의 비극이 드러난다. 온몸을 쉴 새 없이 부르르 떨어대니, 배터리가 금세 바닥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 대목에서 내레이션은 비장해진다.
“첨서는 두 시간에 한 번 꼴로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밥을 한 끼만 안 먹어도 죽고, 두 시간 이상 잠을 자도 죽습니다.”
세상에, 먹느라고 잠도 편히 못 잔다니. 선잠이 들었다가도 “어이쿠, 이러다가 내가 죽지” 하고 경기하듯 벌떡 일어나는 첨서를 상상하자 배를 잡고 웃다가 눈물이 날 판이었다. 인간을 비롯해 ‘먹고사니즘’에 허덕이지 않는 동물은 없다지만, 첨서는 코끼리며 코뿔소, 회색곰 등 날마다 자기 몸무게에 육박하게 먹어야 하는 동물들의 민생고를 가벼운 투정으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심각성이 있었다. 적어도 첨서에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실화인 거다.
그 반대편에 있는 짐승이 뱀이다. 물론 안 먹기로는 이슬만 먹는 매미가 최고일 테고, 그 밖에도 거미나 메뚜기, 사슴벌레 같은 곤충류가 상위에 랭크되겠지만, 사이즈가 좀 되는 동물들 중에서는 단연 뱀이 가장 적게 먹고도 오래 버틴다. 뱀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순간, 나는 뱀에게 홀라당 마음을 빼앗겼다.
“뱀은 한 번 먹이를 잘 먹어두면 길게는 11개월 동안 안 먹고 지낼 수 있습니다.”
오오, 멋지다. 자연계에 이런 경탄할 만한 능력자가 있었다니. 뱀이야말로 인류가 열망하는 ‘경제적 자유’를 실현한 모범이 아닌가. 사실 뱀이 이렇게 적게 먹고도 잘만 버티는 데는 변온동물(變溫動物)인 이유가 크다고 한다. 인간을 비롯한 항온동물(恒溫動物)이 먹이를 섭취해 얻은 열량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변온동물은 햇볕을 쬐는 등 체온 조절을 위한 열원(熱源)을 환경에서 얻는 열에너지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열량이 남아도는 거다. 한여름 따끈따끈한 바위에 누워 있기를 즐기는 뱀의 생태가 단박에 이해가 가지 않는가.
사람들은 종종 다음 생에는 바위가 되고 싶다느니, 소나무가 되고 싶다느니, 호랑이가 되고 싶다느니 하는 말들을 한다. 사실 그런 말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동물 다큐멘터리를 몰아서 보며 결심했다. 만약 동물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나마 뱀이 되는 게 제일 낫겠다고. 친구는 이 말을 듣더니 뱀은 그보다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니 곰이나 호랑이, 고래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더 낫지 않겠느냐고 권했지만 나는 그깟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봤자 걔네들은 온종일 먹느라 볼 장 다 보잖아. 나는 먹이 사냥은 일 년에 딱 한 번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 있게 보낼 거야.”
친구는 먹고사니즘에 치인 시간 가난뱅이의 포부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남는 시간에 대체 뭘 하려고?” 나는 고고한 승려나 선비처럼 명상과 사색에 몰두해 마침내 허물을 벗고 화룡승천(化龍昇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록 전설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자연계에서 용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짐승은 먹고사니즘에서 획기적으로 벗어난 뱀뿐이라고 나는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남모르는 결심을 했다. 앞으로 미운 사람이 있으면 다른 복수는 하나도 안 하고, 내생에 첨서로 환생하길 빌어드리기로. 상상만 해도 가슴에 똬리를 튼 미움의 응어리가 확 내려간다. 근데 첨서로 태어난다니, 밉다가도 불쌍한 마음이 들 거 같아서 이를 어쩐담?
김은하 |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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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