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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세이셸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세이셸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세이셜’이라고 잘못 쓰거나 발음하곤 했다. 그만큼 알려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제도 근처에 있는 이 나라에 대한 기억 중 가장 특별한 건 인구 9만의 나라에 인구의 세 배가 넘는 거북이가 산다는 것이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개나 고양이 대신 거북이를 키울 정도니 말을 말자.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인 빅토리아에는 신호등이 달랑 네 개뿐이고 저녁 대여섯 시가 되면 관광지가 아닌 동네 가게의 모든 문은 일제히 셔터가 내려간다.

그러나 인천에서 21시간이나 걸리는 이 먼 나라의 물가는 그리 싸지 않다. 나라는 작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워낙 많고, 해변이 아름다워 관광객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인이 많았는데, 압도적으로 중장년이나 노인이 많았다. 노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해변을 걷거나, 와인을 시켜놓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버드 아일랜드’라는 섬에 들어갔을 때는 더 그랬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500원을 받기 위해 오줌을 참고 줄을 서 있는 노인들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됐다. 기사는 “지팡이는 아픈 다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빨리 500원을 받기 위해서다. 노인들은 지팡이를 바닥에 찍으며 질주했다”라는 단 세 개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매주 목요일 아침, 신반포역 주위에 모인 노인들은 인근 교회와 성당에서 나누어주는 500원짜리 세 개를 먼저 받기 위해 새치기나 드잡이도 서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펴낸 <불평등한 고령화 방지 보고서>에 따르면 66∼75세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38개 회원국 중 1위다.

몇 시간 전까지 내가 본 풍경과 기사는 극단적으로 달랐다. 마음이 좋지 않고, 가슴이 뻐근해졌다. 세이셸의 좋은 호텔과 식당에는 어김없이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이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다. 자식 키우며 평생을 일했으니 젊은 사람들에 비해 부를 축적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불안’이다. 헬조선이란 말은 객관적인 경제지표라기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적 반응에 더 가깝다. 피부에 새겨진 말인 셈이다. 나 역시 노후를 떠올리면 불안하고, 세이셸의 아름다운 해변 같은 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의 단상을 일기장에 적었다. 노년, 노인, 노후에 대한 얘기를 첫 문장으로 쓰다가 우울해져서 문득 ‘자연’에 대한 얘길 적었다. 새들의 땅인 버드 아일랜드에서 깨달은 한 가지는 ‘생명체는 밤이 되면 잠든다’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새는 밤새 울었다. 자연은 고요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를 만들어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에 새소리까지, 버드 아일랜드의 시간은 시끄러웠다. 다만 그 시끄러움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평온하다는 게 달랐다. 이런 곳에선 휴대폰의 알람은 필요하지 않다. 미친 듯 울어대는 새소리가 자연 알람 기능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는 한 할머니는 시계를 두고 다닌다고 했다. 몸이 자연의 시간에 맞춰져 정확하게 배고프고, 졸립고, 눈뜨는 시간을 알려준다고 했다.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 적이 언제였나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문득, 내 노년의 시간이 생체 시간에 딱 들어맞는 그런 시간일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이 잠든 사람들의 어깨를 슬쩍 건드려 깨우기 시작했다. 기내식 먹을 시간이었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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