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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사막에서는 방향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모든 것이 메말라버린 모래사막에는 이정표나 랜드마크가 없어, 겨우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살피거나 밤하늘의 북극성을 바라보는 수밖엔 없다. 요즘 나는 더위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느낌이 간혹 든다. 오랜 폭염으로 도시가 사막처럼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이정표가 있고, 사거리가 있고, 남향집들이 있지만, 과연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태양 아래에서 사막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이러한 육체의 고통은 정신과 직결되어 있다.

연재소설 마감 원고 교정지가 왔지만 건성으로 봐서 보내고 말았다. 문장을 보는 집중력이 떨어져 도대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수리를 부탁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기사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뜯어서 해당 회사 앞에 갈 힘도 없다. 에어컨이 고장 났으니 전기료 폭탄은 안 맞겠다 싶어 위안을 삼는다. 참 한심한 일이다.

며칠 전 실크로드를 답사하고 돌아온 후배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사막의 풍경을 담은 사진에 눈길이 간다. 그가 ‘사막에서 살아 돌아온 줄 알았는데 쪄죽으러 들어온 것 같네요.ㅋ’ 하고 간단한 메시지를 달아 보냈다. 요즘 우리나라는 사막보다 폭염이 더하다. 콘크리트와 도로, 철로 만들어진 도시 환경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요즘 나는 가끔 사막을 떠올린다. 이 더위를 버티게 해주는 용기를 사막에서 얻는다. 일종의 아날로지(유추) 효과라고나 할까. 사막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시인들이 노래하고 어린 왕자가 다녀간 곳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사막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시적 은유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낙타’를 읽어보자.

 

사막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 손 저어 대답하면서, /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 별과 달과 해와 / 모래만 보고 살다가, /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길동무 되어서.

노시인은 당신의 저승길을 낙타를 타고 가고자 한다. 저승길까지는 몰라도 현실을 버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낙타와 같다. 낙타의 큰 눈과 눈썹은 사막의 모래를 견디기 위한 진화(용불용설)의 결과다. 낙타의 눈을 자세히 보면 아주 아름다운 보석 같다. 두더지나 생쥐와는 다른 눈이다.

낙타는 운명적으로 사막의 고통과 슬픔을 잘 보게 태어났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법은 그저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 여름을 건너는 법도 따로 없다. 그저 낙타처럼 하루하루 터벅터벅 걸어가는 수밖에.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이 아프리카나 사하라사막이 아니기에 낙타는 인생의 은유일 뿐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낙타처럼 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차라리 저기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야 용기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오아시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혹시 오랜 가뭄에 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까지만 기다려보자. 선선한 바람이 불면 또 다른 생각이 나겠지. 지금은 오로지 낙타처럼 걸어가는 수밖에.

 

· 원재훈 (시인)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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