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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오늘 문득 행복한 왕자가 그립다

트라팔가 광장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젊은이들이 익숙한 음악에 맞춰 어디서 본 듯한 춤을 추고 있었다. ‘강남 스타일’이다. 방학을 맞아 최근 방문한 영국 런던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유튜브 조회수가 굉장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랍다 못해 감격스러웠다.

나는 런던에 갈 기회가 되면 순례하는 기분으로 트라팔가 광장을 찾는다. 런던의 가장 중심지이자 번화가라서 찾는 것은 아니다. 광장 중심에 국립박물관이 있어서도 아니다. 딱 하나, 오스카 와일드의 기념비를 찾기 위해서다.

기념비가 트라팔가 광장에 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찾기에 실패한다. 동행한 현지 후배조차 수차례 노력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관광 안내서에서도 와일드의 시비가 트라팔가 광장에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워낙 깊숙이 숨겨져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김동률교수

▷김동률 ·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나는 오스카 와일드를 몹시 좋아한다. 아득한 유년시절 읽었던 짧은 동화 때문이다. <행복한 왕자>다. 어느 늦가을 저녁, 따뜻한 남쪽을 향하던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하는 순간 왕자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살아생전 불행을 몰랐던 행복했던 왕자는 죽어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자리 잡게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내어 그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남쪽 나라로 날아갈 시기를 놓친 제비는 왕자를 장식한 모든 보석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기를 끝냄과 동시에 동상의 발아래서 얼어 죽는다. 봄이 오자 마을 사람은 한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멋있는 왕자의 동상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있자 창피하다며 부숴버렸다. 그러나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물건,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나는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유년시절 읽은 이 짧은 동화를 평생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외부 특강을 하거나 학기 말 종강에는 마음속에 ‘행복한 왕자’를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일랜드 출신의 오스카 와일드가 쓴 이 동화는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닥친 당시 영국 사회의 이기주의, 물질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인간에 대한 사랑의 존귀함을 호소하고 있다. 와일드는 비록 생전엔 배척을 받았지만, 사후 100여 년 만인 1998년 영국 정부에 의해 트라팔가 광장에 추모비가 세워짐으로써 명성을 인정받았다.

나는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되새길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이타주의(Altruism)가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특히 타인과 함께하고 배려하는 이타주의가 중요하다. 마치 혼자만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미래 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곧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도 재앙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행복한 왕자’를 누구에겐가 들려줄 때마다 한 세기 전 와일드가 우리에게 던져준 고귀한 휴머니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면서 기념비에 새겨진 “비록 우리 모두 시궁창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문득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시대는 행복했다. 별들은 아득하고 여름은 깊어간다.


·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20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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