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9월 12일 오후 8시 32분, 경북 경주시를 진원지로 하는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한국 방송사들은 특별방송을 통해 여진이 두려워 귀가하지 못하고 밖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의 대책을 설명하는 내용도 있었다. 다음 날 신문에서도 지진 관련 뉴스를 대서특필했다. 마치 ‘대지진’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무리도 아니다. 규모 5.8 지진은 한국 내 관측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에 앞서 오후 7시 44분에는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났다. 또한 일주일 후인 9월 19일 경주 인근에서 규모 4.5의 여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이 거의 없는 한국은 세 차례에 걸친 예상 밖의 흔들림에공격을 당했다.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상’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민들이 갑작스러운 지진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올해 4월 구마모토현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한국 지인들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왜 사재기를 하지 않냐’, ‘어떻게 혼란 없이 질서정연하게 대응을 하느냐’, ‘(일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쩐지 으스스하고 무섭다’라는 의견들이었다.
일본에는 ‘곤란할 때는 피차일반’이라는 말이 있다. 곤란한 상황에 누군가에게 부탁하면서 너무 미안해할필요가 없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는 도움을 요청했을 테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의미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재해 때 발휘되는지도 모른다. 또한 ‘지진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자’라는 끈질긴 대처가 일본인과 정부의 대응 배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방재의 날’ 정하고 대피 훈련
도교의 모든 초등학교 의자에는 ‘방재 두건’ 비치
일본은 재해가 잦다. 태풍도 자주 불고, 화산도 폭발한다. 같은 자연 재해라고 하더라도 지진 만큼은 대응이 크게 다르다. 태풍은 일기예보에 따라 사전 준비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 지진 후에는 화재도 뒤따른다. 진원지가 바다일 경우에는 해일도 경계해야 한다. 피난, 구조, 화재에 대한 초동대응과 더불어 피난소 운영과 식량 조달, 수도·가스·전기의 복구 및 자원 봉사자에 대한 대응 등 다수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지진 대책을 크게 바꾼 계기는 1923년 관동대지진이었다. 관동대지진은 도쿄를 중심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 일본에서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을 ‘방재(防災)의 날’로정하고, 매년 각지에서 대피 훈련 등을 실시하고있다.

▶일본에서 수도 직하지진을 대비해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히로시마에서 도쿄로 이사했다. 그때 교실에 들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의자’였다. 모든 의자에는 ‘방재 두건’이 비치돼 있었다. 또 매월 1회 대피 훈련을 했다. 훈련이 시작되면 지진 발생을 알리는 교내 방송 후 방재 두건을 쓰고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당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오카시(과자)’라는 단어다. ‘오사나이(밀치지 않기)’, ‘가케나이(뛰지 않기)’, ‘샤베라나이(떠들지 않기)’의 첫 글자를 따서 대피할 때의 주의사항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말이다.
1995년 1월 17일에 일어난 한신, 아와지 대지진도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 사망자, 행방불명자는 6400명이 넘었다. 내가 피해 지역인 고베지국에 부임한 건 2000년이었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여전히 지진에 대해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왜 계속 보도를 한 것일까. 그 당시 선배에게서 들었던 말은 "지진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삼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정부도 효고현, 고베시 등의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에도 돗토리와 후쿠오카, 니가타 등으로 큰 지진이 이어졌고, 2011년 3월 11일에는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똑같은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대나 장소가 달라지면 피해와 대응도 달라진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어떤 재해가 일어날지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때 도움이 되는 것이 과거 겪은 지진에서의 교훈이다.
재해에 완벽히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고, 다음에 있을 재난 방지로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진에 대한 기록을 정확하게 남겨야 한다.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며 다음을 대비하는 일본
문제점을 밝히고 훈련 반복해야 재해에 강해져
기록해야 할 것은 단순히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등 피해자의수치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소방과 경찰, 병원, 기업 등지진 대응에 관련된 각각의 단체가, 몇 시 몇 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가 어떤 대응을 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표하고, 검증 자료로 써야 한다. 검증을 거듭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밝혀내어 다음 재해 때 교훈으로삼아야 한다.
전쟁 이후 최악의 피해를 낸 동일본대지진 때는 사고조사위원회가 정부, 국회에 더해 민간에서도 발족했다. 기록이나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또한 미디어는 지금도 당시 상황에 대한 검증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수도 직하지진, 동해지진, 동남해지진, 남해지진을 가정하고 있다. 일어난다면 만 단위의 사망자가 예상된다. 피해자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기 위해 교훈을 살려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번 지진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가. 그것이 바로 한국에 요구되는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확한 기록을 남겨 공표하고, 검증해 거기에서 다음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국민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수정해야 한다. 대책에 기초한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훈련에서 밝혀진 문제점이 있으면 다시 대책을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반복해야 재해에 강해지는 것이다.
서울 시내를 걷고 있으면 지진이 일어났을 때 피해가 생길 만한 건물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소방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길도 보인다.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본은 ‘재해 대국’이기도 하다. 일본의 교훈을 공유하면 한국의 방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력을 기대하고 싶다.
‘재해는 잊을 무렵에 온다.’ 이것은 일본의 물리학자 테라다 토라히코의 유명한 경구(警句)인데,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글· 히가시오카 토오루(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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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