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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직후 전국의 양궁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다음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경기 규정이 또 바뀔 것인가를 논의했다. 지도자들이 전부 다 제안서를 써 냈다. 의견들을 모아보니 ‘혹시 이렇게 바뀔지도 모른다’ 하는 내용들이 네 가지 정도로 압축됐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4년이 지나 베이징올림픽을 불과 8개월 남겨놓고 국제양궁연맹에서 새로 바뀐 경기 방식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다른 국가 양궁팀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러나 우리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미 3년 반 동안이나 그것에 대비해 훈련해왔이기 때문이다.”

전 양궁 남자대표팀 감독 서거원의 책 <따뜻한 독종>을 읽다가 여러 번 멈칫했다. 세계 최고라는 한국 양궁이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까지’ 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한국 내에서 양궁 국내 랭킹 80위이면 세계 랭킹 5위권이다).

 가령 1년 전 열리는 프레올림픽에서 현장에서 채집한 대기석, 연습실, 현장음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시뮬레이션해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장면이라든가, 현장 아나운서에게 영어인 ‘텐’ 대신 우리 말 ‘십점’을 종이에 발음기호로 표시해 외치게 한 것 등은 선수들의 불안한 심리와 본능까지 섬세히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외국 경기의 경우, 화장실 가는 시간만 체크해봐도 그 선수의 컨디션이 몇 퍼센트까지 올라왔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은 또 어떤가.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하는 운동’ 말고 ‘보는 운동’ 말이다(‘하는 쪽’에 관심이 많았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언젠가 양궁 국가대표 김경욱 선수의 경기 해설을 들은 후, 선수와 감독들의 ‘말’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연아나 박지성의 인터뷰를 보며 많은 걸 느꼈다. 한 치의 관념 없이 오직 몸으로 체득한 기술은 깊이 있는 철학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치동계올림픽 때, 은메달을 걸고 활짝 웃던 김연아의 홀가분한 미소에서 ‘이기는 것’ 이상의 태도를 배웠다. 자신에게 지지 않는다는 건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때 생겨나는 힘이란 것도.    
 
“자기 활을 쏴야 합니다.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나 복병은 있고 위기도 있게 마련입니다. 바람은 불다 안 불다 합니다. 지나친 긴장은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욕심내지 말고 평상심으로 잠시 하늘을 쳐다보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졌을 때 더 큰 박수를 쳐주세요. 한번 실수한 선수가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김경욱 선수의 올림픽 해설에선 삶에 대한 비유를 읽었다. 양궁에서 화살의 길이는 제각각인데, 그것은 선수들의 팔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화살의 길이가 모두 다르다는 건 아무리 좋은 활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무용지물이란 뜻이다. 결국 남의 눈치를 보거나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내 활을 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거다.

남 보란 듯 살고 싶다는 말은 지겹게 들었다. 이제 나 보란 듯 살라는 말이 ‘남 보란 듯’이란 말만큼 통용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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