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0년 전 저서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세상의 변화를 속도에 비유하며 “기업은 100마일, 가족은 60마일로 달리는데 정부와 관료는 25마일, 정치는 3마일로 달린다”고 표현했다.
우리 사회가 국가에 바라는 행정의 모습은 100마일로 달리고 싶은 기업들에는 규제를 완화하고 투명하고 신속한 지원을 해주고, 60마일로 해체되거나 소득이 부족해 사각지대로 몰리는 가족들에게는 배려와 소득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화되는 국민 개개인의 수요에 대해서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국민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박근혜정부가 시작한 것이 정부3.0이라는 새로운 정부 운영 패러다임이다. 이는 과거 사회적 요구에 뒤처진 채 25마일로 천천히 운영되던 행정을 국민의 요구에 맞춰 좀 더 빠른 속도로 변화시킴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려는 국가적 전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행정의 투명성과 서비스 제공 능력을 향상하고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의 변화를 꾸준히 추구해왔다.
정부3.0은 국민 요구에 맞추어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정부 운영 패러다임
그 결과 대한민국의 행정 수준은 상당한 발전을 이뤘고 공개, 공유, 소통, 협력의 가치를 내세운 정부3.0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전 부처, 정부 산하 공공기관, 지자체 및 지자체 산하 공기업들이 정부3.0을 실현하기 위해 매년 힘을 쏟은 결과 혁신적인 행정 서비스와 전달방식들이 다수 창출됐으며, 일하는 방식 등 행정문화가 변해가고 있다.
행정정보가 많이 공개되고 정부기관 간 협력이 증진된 것은 물론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던 부분도 해소돼가고 있으며, 공직사회 내에도 뭔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정부3.0 국민체험마당 박람회 개최, 우수사례 선발대회, 성과발표회 등 다양한 노력를 해왔다.
그런데 이 같은 성과는 사실상 정부3.0을 가까이에서 보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고, 아직까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나 공무원들이 많이 있다.
정부3.0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및 행정 절차 개선, 국민의 참여 및 기관 간 협력을 통한 집단지성의 증대, 사회적 약자인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등 과거 어느 정권의 행정 혁신보다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아직도 인식이나 행동의 변화에서 일정 부분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3.0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점들을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첫째, 정부 혁신은 국민을 위한 서비스 전달방식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실질적 참여 기회를 증진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공공데이터 개방과 공유를 통한 맞춤형 서비스의 제공과 더불어 그 매개 수단인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일자리 기회를 창출하는 전략은 전적으로 현대 정부가 추구해야 할 바이다.
이에 대해선 현재 각종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나 정부의 투명성과 시민 참여 기회를 더 높은 차원으로 향상할 수 있는 인터넷 시민포럼, 모바일 투표, 각종 참여 앱 등의 구축은 물론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술적 전자정부의 구축도 중요하지만 정책 과정의 투명성, 부패 방지, 온라인을 통한 시민 참여 등 실질적 ‘열린 정부(Open Governance)’의 실현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혁신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3.0에 대한 각 기관 및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 동기를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정부3.0을 열심히 추진하고 있지만 각 기관은 이를 담당하는 소수의 직원들만이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소수의 직원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로서 정부3.0에 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심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기에는 능력이나 권한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모든 기관장과 단체장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은 경영 평가에 정부3.0 평가 결과가 일부 반영되어 관심이 크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공기업들은 그렇지 않아 관심도 적고 성과도 떨어진다.
다행히 지난 4월 모든 행정기관에 협업책임관(Chief Collaboration Officer, CCO)을 임명하고, 협업과제를 전면적으로 발굴하며, 협업 잘하는 기관과 공무원을 우대하는 ‘행정업무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4월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좀 더 향상된 성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및 산하 공기업들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공공기관 경영 평가처럼 정부 합동평가 및 지방공기업 경영 평가와 연동시켜 단체장 및 지방공무원들의 관심과 인센티브를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셋째, 기관 내 협업책임관을 두어도 기관들이 협업하기 위해서는 부처 이기주의나 이의 근거가 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열린 정부 파트너십(OGP)’이라는 국제기구는 우리나라의 정보 공개 수준을 아직도 미흡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일자리 창출이나 기업 지원을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정부(지자체 포함) 등이 협력해 정부3.0 사례를 개발해도 기업 혁신을 가로막는 인증과 기술 규제 및 보건, 의료, 교육, 콘텐츠 등 유망 서비스산업에 대한 진입 규제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부부처와 관료들의 규제 이기주의 철폐 및 긍정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정부3.0은 최근 직면한 국가적 위기의 새로운 돌파구
정치권 협력과 법률 제•개정 통한 지원 절실히 필요
넷째, 정부3.0과 같이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정 책임자의 의지에 의존하기보다는 이를 책임지는 상설 국가조직의 존재와 법제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3.0의 벤치마킹 사례가 된 선진국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영국의 오픈데이터 정책은 2000년 정보자유법을 제정한 이후 정권이 바뀌어도 내각사무국과 기업기술혁신부와 같은 조직이 중심이 되어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일본도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을 1999년 제정해 내각이 바뀌어도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정부3.0은 단순히 정보의 개방만을 추구하는 전략이 아니라 기관 간 협업, 국민에 대한 각종 맞춤형 서비스 제공,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한 정부 능력의 제고 등 더 넓고 항구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전략이므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충실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정부3.0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25마일 정부의 속도보다 늦은 정치의 속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여러 나라에서 증명됐듯이 사회 변화는 행정의 변화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의 미국을 만든 19세기 말의 연방정부와 도시정부의 개혁운동(Reform Movement)은 약 50년에 걸쳐 진행됐는데, 행정은 물론 정치의 개혁과 함께 이뤄졌다.
또한 1980년대 시행된 미국과 영국의 시장 원리를 활용한 행정개혁, 1990년대 선진국들의 성과주의 정부 혁신 및 2000년대 ICT를 활용한 정부 서비스 혁신 등은 지도자들의 개혁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들이다.
대한민국은 2015년 세계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11위인 선진국이지만, 최근 국가경쟁력의 하락, 후발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 축소,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파산 직전인 한계기업의 증가, 경제성장률의 침체, 고령화 및 청년실업, 사회적 양극화 심화, 낮은 국민 행복지수 등 당면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정부3.0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적 돌파구이며 이 기회의 상실은 선진국 대열에서의 탈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은 지도자와 정부의 변화 의지를 실현해줄 수 있는 정치권의 협력과 필요한 법률의 신속한 제•개정을 통한 국회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글 · 최승범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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