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내게 처음 ‘리추얼’(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준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멜리 노통브였다.
예술은 광기와 비범의 소산이며 뮤즈는 일탈 속에 깃든다는 유산을 가슴에 새긴 대학생 시절이었다. 하루키와 노통브는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 일정한 분량의 소설을 썼다. 노통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4시간 동안 작업하고, 매일 달리는 하루키는 낮잠용으로 듣는 요요마의 슈베르트 연주까지 정해져 있다. 12월이면 거의 10권 분량의 원고를 앞에 두고 다음 해에는 어떤 원고를 책으로 낼 것인지 고르곤 했다는 아멜리 노통브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느낀 충격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매일 2000단어를 목표로 작업한다. 척 클로스는 이 분야에 대해 가장 기념비적인 말을 남겼는데 그의 말은 이렇다.
“영감은 아마추어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작업실에 들어간다!”
물론 매일 포도주를 6병씩 마셨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매일 한 보루(한 갑이 아니라!)의 담배와 암페타민 같은 수많은 약물 칵테일을 술과 함께 복용했던 사르트르가 있다. 매일 50잔의 블랙커피를 마신 발자크의 위장이 어떻게 견뎠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일탈처럼 보이는 이 반복된 행위 때문에 그들이 작업을 멈춘 적은 없었다. 이들은 습관이 야망의 증거라는 걸 입증한 예술가들이다.
“나는 매일 아침을 나만의 의식으로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레그워머를 신고 후드티를 걸치고 모자를 쓴다. 그러고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세우고 운전사에게 91번가와 퍼스트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내 의식은 매일 아침 체육관에서 하는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이 아니다. 내 의식은 바로 택시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내 의식은 끝난다.”
세계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의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 전율했다. 택시에 타는 순간 의식이 끝난다니! 사실 그녀에 관해서라면 ‘사진 한 장’의 효과가 훨씬 울림이 크다. 이제 곧 80세 백발노인인 그녀는 턴 아웃된 상태로 두 팔을 내린 채 자신의 왼쪽 발을 오른쪽 귀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아직도, 여전히, 그렇다.
최근 만났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불안감을 토로했다. 오죽하면 바우만 같은 철학자는 지금의 현대성을 ‘액체성’이라 불렀을까. 한 피디는 중국의 사전 검열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드라마 사전제작이 사드 때문에 물 건너가게 생겼다며 어느 장단에 호흡을 맞춰야 할지 힘들다고 고뇌를 토로했다.
이젠 강연의 시대로 소설가도 수시로 독자들을 만나야 한다. 물처럼 어디든 담겨 변해야 하는 우리의 불안감은 현대의 빠른 속도 때문에 나날이 증폭된다. 그러므로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이토록 허무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리추얼’이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인 의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선 변하지 않는 ‘중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윌리엄 스타이런이 자신의 서재에 붙여놨다는 플로베르의 유명한 글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부르주아처럼 규칙적이고 정돈된 삶을 살아라. 그래야 격정적이고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
나의 리추얼은 눈을 뜨자마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지켜지는 이유는 그것이 유일하게 내 불안감을 잠재우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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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