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매화, 냉이, 보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요즘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시설 작물이 많다 보니 생물의 제철을 알기가 어려운지라, 앞의 질문이 무척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매화, 냉이, 보리는 추운 겨울을 넘겨야만 봄에 꽃을 피우고 봄과 여름에 식탁에 오를 수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먹고사는 생업이나 운치를 즐기는 풍류에서 세 가지를 높이 쳤다.
‘매화’는 매서운 한파를 이기고 봄소식을 알려주는 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특한 생태로 인해 추운 날씨에 핀다는 ‘동매’와 눈 속에도 핀다는 ‘설중매’의 별칭을 가지고 사군자의 하나로 취급되며 그림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냉이’는 나물로 무쳐서 먹으면 겨우내 저장식품을 먹던 사람들의 입안에 싱그러운 봄내음을 풍기며 식욕을 돋운다. ‘보리’는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 생계를 이어줄 마지막 희망의 보루로 사랑을 받았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모든 것을 다 얼려버릴 듯한 혹한이 계속되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매화가 피고, 냉이가 자라며, 보리 이삭이 영글게 된다. <주역>에서도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통찰하여 빛이 하나도 없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지혜를 찾으려고 했다. <주역>의 64괘는 한 줄로 이어진 양효와 중간이 끊어진 음효가 여섯 가지로 포개진 모양으로 되어 있다. ‘건괘’는 여섯 효가 모두 이어진 양효로, ‘곤괘’는 여섯 효가 모두 끊어진 음효로 되어 있다.
이 양효와 음효는 사람의 인생살이가 잘 나가기도 하다가 뚝 끊어지기도 하는 양상을 상징하고 있다. 64괘 중 ‘복괘’는 제일 아랫자리만 양효이고, 두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모두 음효인 독특한 꼴로 되어 있다. 복괘는 음의 기운이 득세하는 추운 겨울인데도 양의 기운이 조금씩 살아나는 동지 즈음의 기상을 나타낸다. 아무리 음의 기운이 강세를 보여도 생명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복괘는 바로 생명의 기운을 잉태하고 있는 자연의 마음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동지는 음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지만 이를 경계로 양의 기운이 생겨나 결국 양의 기운이 득세하는 봄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역 점을 쳐서 복괘를 얻으면 매서운 추위에도 봄의 기운이 싹트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고서 희망을 가졌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취업과 사업 등 많은 영역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자연으로 치면 활기차고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봄여름이 아니라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 해당된다. 자연에서 겨울이 아무리 매섭다고 하더라도 겨울에 주어진 시간의 길이, 즉 절기(節期)를 벗어날 수 없다. 삶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 변화의 틈새를 알아차리고 방향을 포착한다면 삶의 곤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바닥을 치고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어렵다고 웅크리며 주위와 담을 쌓고 소통하지 않으면 변화가 다가오는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주위와 소통하면서 바로 어둠과 추위가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힘이 약해지는 기미를 예리하게 통찰하여 나와 접속을 시도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아직 겨울이지만 산과 들에서 매화, 냉이와 보리를 보며 결국 불리한 환경을 극복할 미래의 싹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신정근 |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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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